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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분명히 그 경험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자신도 그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패’의 자산목록에 노동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실패에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업무지시가 비정규직 관련이었고, 비정규직 비율(곧 정규직 전환 비율로 해석될)을 적은 전광판을 집무실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수십만개 만들기 위해 무려 1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근데 여기에 노동은 없다. 연일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대통령이 나서지만 여기에 노동은 없다. 노동 문제를 ‘일자리’의 문제로 치환한 것이 문재인의 노동정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이었다.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대립적 노사관계가 안정적 노사관계로 바뀌면서 노동행정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어 명칭도 바꾼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냈고, 비정규직 비율 축소를 말하더니, 갑자기 ‘노사관계 선진화법’을 들고나와 비정규직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확대 법률을 통과시켰다.

24일 오전 문재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그때 노사관계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2003년 취임 첫해 노동자들은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믿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분신의 행렬로 바뀌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 이용석이 분신했고, 세원테크 지회장 이해남과 이현중 등이 자결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을까를 묻기보다, “죽음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잔인하게 일갈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실패, 아니 참극으로부터 교훈을 얻을까? 또다시 노동을 우회하는, 노동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닐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진용을 봐도 이 우려는 재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은 안현효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일자리기획비서관은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내정됐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도 관료 출신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을 빼고 온통 경제부처 관료 출신인 셈이다. 그리고 장하성 실장도 사실 노동 전문가가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구조 전문가이다. 결국 노동정책을 산업정책 우위로 바라본다.

나는 한국의 노동 문제를 한 정권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의가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로 여기 이 지점에서 출발하자. 이 냉정한 현실을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적어도 인정하자.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처럼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적어도 국가의 집행자인 정부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최소한의 균형자 노릇을 하란 말이다. 편을 들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편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노동의 편은 아니겠지만, 자본의 편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법도 재판도 다 노동자들이 이겨도, 자본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 법의 집행관으로서 나서라는 말이다. 적어도 자본과 결탁한 친자본적인 정권이 되진 말라는 말이다. 소위 국가·자본의 동맹을 해체하라는 말이다. 노동자들을 ‘비국민’ 취급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자리를 늘려주기 이전에 일자리를 자본이 없애는 데 가담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당연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미개하고 후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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