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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나라가 시끄럽다. 물론 이번엔 사안의 심각성과 스케일이 다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땅에서 바람 잘 날이 아예 사라져 버린 듯하다. 오늘은 어떤 뉴스가 이 나라를 흔드느냐가 문제이지, 오늘도 엄청난 소식이 있을지 없을지는 관건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소용돌이는 생활이 되고, 진짜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말이야 민생이 먼저라지만 당장 눈앞의 불끄기 바쁜 것이 거의 1년에 365일이다. 인간의 삶과 생활도 이런 취급을 받는데, 그렇다면 다른 생물들은? 자연은? 이들에게도 관심의 차례는 과연 돌아올까?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난리통을 겪는 동안, 한반도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오늘의 핫이슈와 아주 먼 문제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제66회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슬로베니아 포트로즈에서 10월20일부터 10월28일까지 개최된 것이다. 이 판국에 웬 고래? 그렇다. 이 판국에야말로 고래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고래를 생각하는, 아니 자연과 생명에 눈을 돌리는 ‘판국’이란 도무지 생겨나질 않는다. 오히려 ‘판’이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들, 언론과 대중이 놓치고 있지만 엄연히 중차대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논의하는 것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국제포경위원회의 이름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고래 잡자는 모임인가? 1946년 설립된 이 위원회는 고래의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며 효과적 보전을 바탕으로 한 엄중한 관리하의 포경만 허락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82년 모든 상업적 포경을 전면 금지한 것이 가장 주된 업적이다. 고등영장류와 비견될 정도로 지능이 높고, 정교한 사회구조를 이루며, 감정과 이타심을 가지고, 뭍에서 물로 돌아간 독특한 포유류인 고래를 살리자는 취지로 세계가 모인 자리다. 우리나라도 1978년부터 회원국이다. 그러나  이번 연례회의에서도 한국이 보여준 자세는 고래를 보호하자는 쪽과 거리가 멀다. 아니 올해도 국제포경사회에서 악명 높은 일본의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과학적 포경’이라는 해괴한 명분으로 매년 고래 수백마리를 잡아 국제적 원성을 샀는데 이런 고래잡이 과정을 엄격히 규제하는 결의안이 이번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물론 일본은 반대표를 던졌고, 우리 대표단은 기권했다. 또 남대서양에 인도와 러시아를 합친 면적의 고래보호구역을 만들자는 제안이 발의되었는데 이 역시 일본을 비롯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포경 국가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다. 만약 조금만 더 득표했다면 이미 조성된 인도양과 남대양 보호구역과 함께 실로 엄청난 규모의 안전한 고래 서식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은? 떡하니 반대표를 던졌다.         

실제로 해당 바다와 해안선이 인접한 나라들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가봉, 남아공이 발의를 하고 지지한 반면, 한국을 포함하여 이곳으로부터 수천㎞ 떨어진 국가들이 막은 것이다. 우리 대표단의 발언은 더욱 가관이다. 보호지역 설정을 열렬히 찬성한다는 호주 다음 차례에 기껏 한다는 말이, 보호지역이 어떻게 고래잡이를 허용할 것인지 근거가 충분치 않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보호하자는 곳에서 고래잡이 방안을 강구하라? 대체 무슨 희한한 모순어법인지.

동물원에서 지내다 고향 제주도 앞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불행히도 이는 한국이 고래를 대하는 자세의 상징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단적으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된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고래가 어망에 ‘우연히’ 걸리는 수가 다른 나라의 10배에 달하는 나라다. 이렇게 ‘우연히’ 잡힌 고래는 해경이 검사해서 작살 등에 의한 외상이 없는 경우 유통이 된다. 전국 50개에 달하는 고래식당들이 모두 이런 불확실한 납품 경로에 의존한다고 누가 믿겠는가? 실제로 지난 5월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유통한 일당이 검거되고 40억원어치의 고래가 압수되었다. 작살은 의도이고 망은 우연이라는 이 단순하고 해괴한 논리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의 고래 혼획이 우연인가 의도인가를 조사한 거의 유일한 연구에 의하면 혼획 중 의도된 포획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와 함께 일본에서 불법 포획된 고기도 수입된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는지가 전부는 아니다. 울산의 고래관광 프로그램은 살아 있는 고래를 보러 나갔다가 뭍으로 돌아와 여지없이 고래고기를 먹는 것으로 귀결된다. 횟집 앞 어항을 보면서 식당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모양새인데, 고래관광이 고래 포획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국제적 관행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국이다. 일본이라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한국이, 일본이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사안 중 하나인 고래에 관해서는 거의 한패로 묶인다는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연히’ 망에 걸려 식탁에 오르는 다음 고래가 제돌이는 아닐지, 야생학교는 불안하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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