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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지금 이보다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 있을까. 열의 손아귀에 꽉 잡혀 꼼짝달싹도 못하며 연명하는 날들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너무 더운 나머지 세상만사가 다 무가치해질 정도이다. 정치고, 경제고, 연예고, 스포츠고 다 필요 없다. 더워 죽겠는데 무슨. 밤이 되어도 전혀 쉴 틈을 주지 않는 더위에 헛되이 잠을 청해본다. 잤는지, 못 잤는지도 불분명한 몽롱한 정신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든다. 간신히 넘긴 하루. 하지만 오늘은 또 어쩐다냐.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도다.

온도 몇 도의 차이가 이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우리는 혀를 내두른다. 냉방된 공간을 산소통처럼 찾아다니는 나약한 육신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리 고매하고 똑똑한 척을 해도 결국 하나의 생물일 뿐이구나, 우리는 탄식한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더위가 우리로 하여금 근본적인 시선을 갖게 해준다. 더위는 우리를 한없이 솔직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더위를 통해서 우리는 지구인이 된다. 당장의 더위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음을 몸소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대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현대의 삶이다. 신자유주의보다, 저성장보다, 테러리즘보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이의 피부에 완벽히 와 닿는 가장 심각한 전 지구적 이슈. 나와 무관하다며 모든 것을 무시해버려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궁극적인 생존의 문제. 바로 기후변화이다.

그렇다. 지겨워 죽겠지만, 바로 그 기후변화이다. 지겨운 이유는 하도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많이 들리는 이유는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이유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워 돌아가시겠는데 에어컨 켜지 말라는 헛소리냐? 혹자는 벌써부터 역정을 낸다. 정확히 그 말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범주의 말이긴 하다. 더위는 더 이상 단순 기상현상이 아니다. 날씨는 더 이상 인사치레의 주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기 시작한 유례없는 이 ‘열의 위력’은 문명의 총체가 그동안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빚더미 쇼케이스의 서막이다. 하필 이 시점에 태어나 살고 있는 우리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세대와 그 이후를 생각하면 오히려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 고통은 잠시 있다가 떠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가면 갈수록 심해질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2016년 상반기는 역대 온도 기록을 모두 경신하였다. 그러니까 올해 1, 2, 3, 4, 5, 6월은 모두, 지구 역사상 있었던 모든 1, 2, 3, 4, 5, 6월보다 더운 달이었다. 미국 국립기후자료센터에 따르면 벌써 14개월 연속으로 기록경신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달은 산업화 이전 평균치보다 1도 이상 높은 고온에 달할 정도로 올해 기후변화의 양상은 강력하다. 지난해 파리협약에서 도출된 목표치는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아래로 묶자는 것이었는데…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15년 중 14년이 2000년대에 일어났다. 참, 지금이 2016년이던가? 어떻게 봐도, 아니 안 보려고 해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구가 위험하게, 정말로 위험하게 달궈지고 있다.

예전에는 뉴스로 들었던 것을 지금은 몸으로 느낀다. 나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이 순간 함께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충격이 아니다. 사실 이미 예상된 것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충격이다.

전력수요 폭증으로 전력 예비율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누진세의 한시적 완화를 발표했다. 당장 더위와 전기세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국민에겐 반가운 소식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탄소배출 7위의 국가로서는 그야말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자세이다. 한국은 지난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탄소배출 증가 속도 1위의 불명예에 오른 나라이다. 다른 나라들은 탄소배출을 1인당 평균 7.2%로 줄일 때 우리는 110.8%로 늘리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라는 국제단체가 운영하는 ‘지구용량 초과의 날’이라는 것이 있다. 지구의 일 년 치 자원을 12월31일에 다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실제로 소모되는 날을 측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8월13일이었던 것이 올해는 8월8일로 5일 앞당겨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은 지구가 3.3개가 필요한 수준의 생활을 하는 국가로 전체 4위에 올랐고, 면적 대비 자원 소비량은 전 세계에서 1위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에너지 사용량, 그리고 증가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극심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위 앞에서 우리는 더 늘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골드만 환경상을 받은 미카엘 크라빅 박사가 말하는 더위에 대응하는 도시 시스템의 변화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정부, 기업, 국민 모두 나 몰라라 한다. 빗물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도시에서 모으고 나무와 풀의 녹지대를 늘려 온도를 낮춰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에어컨을 어떻게 하면 더 틀까만을 골몰하고 있다. 한 나라가 이토록 ‘철면피’라는 사실이 이번 더위의 진짜 충격임을, 야생학교는 깨닫는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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