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며칠은 내게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생태나 환경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고행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개인적인 차원에서 겪은 고통의 나날들이었다. 지방에 사는 관계로 서울에 오면 부모님 댁에 묵으며 지내는데, 이곳은 우리 가족이 벌써 15년 이상 함께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 그중에서도 나는 특별히 이 건물 앞뒤로 있는 좁은 띠의 녹지를 사랑했었다. 총 여섯 가구가 사는 일종의 빌라인 이 건물의 입구에는 소나무와 목련이 제법 울창했고, 뒤에는 상수리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다른 초목들과 함께 어우러져 내겐 각박한 도심 속 하나의 녹색 오아시스와 같았다.

집 주변에 식물이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나뭇잎이 제공하는 녹색 빛도 좋지만, 그 자연이 생태적인 관계망 속에서 기능하며 존재하는 자연인지 아닌지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 우리 집 주변의 나무들은 참새,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 어치, 까치, 오목눈이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심지어는 번식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한 번은 멧비둘기 한 쌍이 막 둥지를 틀 때쯤, 누군가 위층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사다리차를 불렀고, 이때 발생한 소음으로 새들이 번식을 포기했던 적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작은 녹지도 우거진 덕에 도시 생태계의 일원들이 믿고 찾아오는 공간이었고, 이를 집안에서 지켜보는 나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함께함이 그저 좋았다. 밤에는 풀벌레소리가 은은했고, 한 번은 귀뚜라미 한 마리가 에어컨 관을 타고 들어와 방 안에서 울며 밤잠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원망한 적은 없다. 자연과의 공존을 원한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만 하는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소중한 오아시스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주민 중 누군가가 건물의 균열 및 누수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원인을 나무의 뿌리로 진단한 것이다. 신속하게 반상회가 열리고 바로 이튿날 일꾼들이 들이닥쳤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의심되는 모든 나무는 밑동째 베어졌고, 극형을 면한 몇 그루는 목숨만 겨우 남겨두는 수준으로 잘렸다. 순식간에 휑해진 땅 위에는 지난날의 푸름을 암시하는 잔해만 흩뿌려져 있었다. 나름 주민들과 언쟁도 벌이면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안전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후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났다. 내가 사랑하던 자연의 파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안전의 문제를 일으킨다면 당연히 나무도 자를 수 있다. 그것이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정확한 근거도 없이, 항변하지 못하는 자연에 문제의 원인을 무작정 덮어씌운다는 것이다. 잔혹한 범죄자에게도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자연에 전혀 허용되지 않는 셈이다. 정확히 어떤 나무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에 대한 요구는 비용을 들어 쉽게 묵살된다.

건물 자체의 건축학적 하자도 같은 이유로 고려되지 않는다. 형편없이 잘린 나무를 두고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새순이 나온다며 마치 자연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은 것처럼 정당화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생태적 고려도 없다. 비전문가가 내린 ‘모 아니면 도’ 식의 결정에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지만, 안전이라는 의제를 들이대는 순간 그 어떤 세심한 고려나 대안도 내팽개쳐지는 것이다.

인간의 안전이 도마에 오르는 순간 나머지 자연의 안전은 바로 폐기처분하는 것,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그것에 대한 좋은 사례가 얼마 전에 일어난 고릴라 사건이다.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한 어린이가 부모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고릴라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를 구하려고 동물원 측이 17살 수컷 고릴라인 하람베를 사살한 것이다. 마취 총을 쏠 경우 동물이 바로 쓰러지지 않고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그와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보다 전에는 한 청년이 자살하겠다며 사자 우리에 뛰어들어간 것을 구하기 위해 사자 두 마리를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인간이 동물원 규율을 어기고 동물의 공간을 침범해놓고서 총알은 동물이 맞은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과 자연이 그 어떤 형태로 엮이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구를 자연에 들이대겠다는 우리의 추악한 진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신의 서식지에서 멀쩡히 살고 있다가 잡혀 와, 오락의 대상으로 다뤄지다가, 선을 넘은 몇몇 때문에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된 자연. “당신의 애였다면 어쨌겠느냐?”라고 사람들을 말한다. 나의 애라는 마음가짐을 허한다면, 동시에 고릴라도 누군가의 소중한 고릴라라는 마음가짐도 똑같이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고릴라를 자극시켰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관람자들을 제지한 상태에서 마취나 교환 등을 이용한 대안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인간의 안전 앞에서는 그 어떤 대안도 불필요하고 총구나 톱을 휘두르는 것이 답이라면 그 인간은 공존의 자격이 없다고, 야생학교는 단언한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