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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는 의외로 소리 없이 크게 실패할 때가 있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혹은 다른 소란 때문에 중요한 실패가 지각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실패를 더욱 큰 실패로 만든다.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의 이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던 실패.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런 실패들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한 젊은이의 ‘미안’과 ‘민폐’에서 시작한다. 설요한이라는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지난해 말에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 그는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였다. 중증장애인을 동료로서 지원한다는 것은 그도 중증장애인이라는 뜻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정부가 시범 실시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에 ‘동료지원가’로 채용되었다.

동료지원가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을 찾아내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상담도 하고 자조 모임에도 가며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 연계시키는 일이 주요 업무다. 언뜻 직업상담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취업 정보를 취합해서 구직자에게 제공하기 전에 그는 훨씬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해야 한다. 바로 중증장애인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중증장애인 대다수는 수용시설과 집에서 세상을 등진 채 수십년을 모로 누워 지낸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쓸모없는 짐짝처럼 취급했기에 의지 없는 짐짝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사람들. 이들의 삶의 의지를 살려내는 게 동료지원가의 일이다. 아마도 동료지원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비장애인 활동가들도 자립생활과 자조모임,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똑같은 말을 할 때조차 동료지원가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의 말을 한다. 지금, 나를 보라.

정부가 이 일자리를 만든 건 중증장애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간 중증장애인들에게 단 한 뼘 사회적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던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반성한다고.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이를 위해 새로운 주거 형태, 새로운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다고. 동료지원가는 우리 사회가 중증장애인들에게 파견한 전령사이자 메시지 자체이다.

설요한은 작년 4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10개월간 그는 무려 40명의 중증장애인을 찾아내서 상담했고 자조모임을 결성해서 사회활동을 도왔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한 달에 4명을 만나고, 한 사람당 매월 5번씩 상담을 했다. 그리고 한 사람당 8개의 서류를 작성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했음에도 그는 수첩 여기저기에 ‘실적이 부족하다’고 썼다. 그는 초인적으로 일했는데 그 초인은 자신의 열정에서 온 게 아니라 월 60만원 남짓한 임금에 할당된 업무였던 것이다.

그는 실적에 쫓겼다. 실적을 못 채우면 그를 채용한 기관은 그만큼에 해당하는 사업비를 반납해야 한다. 그의 임금만이 아니라 그를 돕는 슈퍼바이저에게 지급되는 수당이나 기타 운영비도 반납해야 한다. 그에게 상담을 받은 동료가 6개월 내에 취업하면 20만원의 연계수당이 추가 지급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일자리를 찾으라고 설득하는 일자리는 만들었지만 그렇게 설득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를 딛고 10개월 활동한

20대 ‘중증장애 동료지원가’

실적 압박 몰려 극단적 선택

“미안·민폐” 그 마지막 문자는

‘비장애 중심 사회’ 실패 단면


한 사회가 중요한 일을 시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면 이렇게 된다. 설요한 같은 중증장애인이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일자리 달라고 농성하니까 떡 하나 던져주는 심정으로 만든 일자리였던 모양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에 착수하면서 그렇게 한 일이 그런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서 추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입은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눈은 그들을 수용시설에 가둔 눈 그대로다. 동료지원이라는 돈도 안되고 생산성도 낮은 일이지만, 폐지 모아 오듯 일감 물어오면 복지 차원에서 푼돈이나 쥐여주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패다. 우리의 자유와 성숙은 실패했다.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아무래도 좋은 일로 대했다. 이 실패가 아무렇지도 않기에 우리 사회는 더 크게 실패했다. 설요한은 단 한 번의 끔찍한 ‘쿵 소리’로 이 실패를 증언했다. 동료 중증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이제 당신과 함께 살 준비가 되었다고, 우리의 반성과 의지를 전달하던 이 젊은이는 문득 자신이 전하던 메시지가 사실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는 동료들에게 문자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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