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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이후 3개월이 지났다.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밖으로는 북핵 문제, 사드 배치, 안으로는 인사청문회 등을 둘러싸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왔다. 그런 와중에도 7월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가 그것이다. 멋진 꿈이다. 5년 뒤 이 계획대로 된다면 덩실덩실 춤을 출 것만 같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적폐청산, 사드 배치 환경평가, 탈원전, 교육개혁, 부동산대책, 부자증세 등 몇몇 핵심과제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너무 굵직굵직한 일들이라서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조차도 가슴에 큰 돌이 얹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마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는다. 현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 개혁을 위한 열망의 대행진, 촛불광장으로부터 탄생한 정부 아니던가?

그러나 일각에서 ‘혹시나? 역시나!’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정권을 잡으면 다 똑같아지는 모양이네’ 하는 냉소적인 촌평이 들리기도 한다. 누구인가 살펴보니, 분명 현 정부의 견고한 지지층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경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혁신과제를 추진하는 정부의 방식은 아직도 ‘반개혁 대(對) 개혁, 구정권 대 신정권, 적폐 대 청산, 보수 대 혁신’의 대립구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립구도는 개혁성향의 지지자들에게 더 큰 환호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고틀로 일을 추진하다보면 이해관계 집단이 찬반 입장을 먼저 꺼내놓고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이런저런 근거를 끌어다 붙이는 식으로 논란이 전개된다. 결국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없는 이전투구의 힘겨루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혁명이 아닌 개혁에는 ‘변화이론’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변화이론이란 인간과 조직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저항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존 코터 교수에 따르면 성공적인 변화에는 8단계 접근이 필요하다. ‘위기감의 조성 → 변화를 추진할 폭넓은 연대의 구축 → 비전과 전략의 수립 → 비전의 전파 → 변화의 광범한 실천과 저항의 극복 → 단기적 성과의 창출 → 성과의 공고화와 더 큰 변화의 추진 → 새로운 체제의 문화적 정착’이 그것이다. 그는 또한 8단계의 순서를 바꾸지 말 것, 어느 한 단계도 건너뛰지 말 것, 그리고 각 단계가 충분히 성숙한 뒤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개혁과제 중에는 권력기관의 적폐청산과 같이 이미 충분히 성숙되어 5단계쯤으로 가도 되는 것이 있는 반면 몇몇 개혁과제는 ‘위기감의 조성’이나 ‘비전의 수립’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교육개혁만 놓고 보더라도 외고·자사고 ‘폐지 대 존속’의 프레임으로 논란이 시작되는 것은 단계에 맞지 않다. 현 교육체제가 왜 위기인지, 누가 앞장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지, 개혁의 비전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부자들은 벌써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여기가 공산국가냐?’는 불만을 터뜨린다. 이들이 적어도 큰소리로 대놓고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해놓고 가야 지속 가능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특정 사안을 오랜 세월 동안 고민해온 사람들은 강고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의 확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자기 확신만으로 개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대다수 국민들의 의식에 비추어 각각의 개혁과제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변화를 추진해야 ‘혁명 아닌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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