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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은 8일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심 절차를 거쳐 무죄가 난 인혁당·강기훈 유서대필·약촌오거리 사건 등을 대표적인 과오로 꼽았다. 검찰총장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사과한 것은 검찰 사상 처음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법원, 경찰, 군은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와 불법행위에 대해 강도 높게 과거사 정리를 했지만 유독 검찰만은 묵묵부답이었다. 늦게나마 검찰의 과거 잘못을 공개사과한 것은 의미있는 고백이라 평가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문 총장은 이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에 대해 수사·기소 전반에 걸쳐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하는 수사심의위원회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수사단을 축소하고, 수사기록 공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모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 할 만하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검찰이 적폐청산 1순위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쏟아놓는 개혁 방안들에 대해 어리둥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검찰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은 필연적이다. 지나치게 비대한 검찰 권한을 분산하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개혁의 방향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문 총장은 앞서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 설치에 대해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을 수 있다”고 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는 “검사가 수사하지 않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이견을 표출한 바 있다. 수사·기소 전 과정을 투명하게 통제받겠다는 수사심의위원회 구성이란 것도 현재의 수사권·기소권을 그대로 갖고 가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혹시 과거사 사과가 검찰개혁에 적대적인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큰 오산이다.

검찰개혁은 아직 멀었다. 진정한 환골탈태는 이런 몇 가지 조치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공룡기관의 막강한 권한을 그대로 둔 채 보여주기식 조치 몇 가지로 개혁 운운하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지금은 검찰권력을 분산하고 민주적 통제를 위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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