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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신설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한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황우석 연구논문 조작’이라는 전대미문의 과학사기 사건의 공범격인 인물을 과학기술 정책을 조정하는 자리에 앉힌 것은 말이 안된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어제는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박 본부장 임명을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최악의 인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9일 오전 과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있다가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2006년 1월 사퇴했다. 당시 박 보좌관은 황 교수팀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황 교수의 복제 실험에 대한 규제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기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게다가 그는 황 교수로부터 2억5000만원의 연구비까지 받았다. 황 교수 연구의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서 그것을 바로잡은 게 아니라 거기에 얹혀간 것이다. 황 교수팀으로부터 줄기세포가 오염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노 대통령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학문적·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직무유기다.

과기혁신본부장은 비록 차관급이지만 연 20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예산 심의와 조정 권한을 가진 과학기술 정책 집행의 컨트롤타워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을 “탄탄한 이론적 기반과 실무경험을 겸비한 인물”로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 분야 변화와 혁신을 이끌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의 과거 행적을 보면 청와대 주장에 동조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도덕성조차 무시하고 함께 근무했던 사람이기에 중용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한 과학자단체는 그의 임명에 대해 “어떤 혁신의 상징도 볼 수 없다”고 혹평했다.

박 본부장의 이런 이력이 분명 문제가 되었을 텐데도 기용된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의 뜻일 가능성이 높다. 황우석 사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인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정부 초기 인사 실패를 계기로 인사 시스템을 강화하라고 해놓고 스스로 시스템을 무력화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문 대통령은 한번 기용한 인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수는 가능한 한 빨리 바로잡는 게 최고의 대책이다. 지체 없이 임명을 철회함으로써 문 대통령이 과학기술계를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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