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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인간을 가장 강력히 바꾸는 제일 간단한 도구는 경험이라고 했다. 경험은 학습의 가장 단순하고 실천적인 과정이다. 공공서비스를 변화시키기 위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서비스 디자인에서도 사용자의 경험(User experience)이 지도의 출발점이자 모든 혁신의 입구라고 한다. 즉 경험은 혁신을 안내하는 기록이다. 정신과 전문의 반데어 콜크를 비롯해 많은 의사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은 몸에 기록되어,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게 한다고 했다. 프랑스 공교육 대안운동가인 프레네는 각성된 머리보다 능숙한 손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함(doing)으로 인해 알게 되는(learning) 학습은 모든 혁신적 교육자나 정책가들의 기본 모토였다. 그래서 경험을 하기 위하여 현장에 나가는 것이다. 공간을 바꾸면, 우리의 뇌는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뇌세포의 배열부터 여러 지각이 바뀐 채로 활동하게 된다. 사무실 안에서 세상을 모두 내다볼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 심마니에게는 보이고 일반 등산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더 훈련된 사람들이 자주 현장에 가야 변화를 마련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개혁가 바자리아는 “갇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신체의 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들만이 아는 공간에 대한 자유와 갈망이 있다”고 했다. 그는 반나치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경험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정신병원 탈시설화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슴에 담게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현장 행정은 그런 점에서 전적으로 옳다. 현장에서 듣게 되는 시민의 육성은 문제의 해답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길을 낼 것이다. 나는 모든 시장과 사업주에게 이런 과정을 바란다. 아마도 삼성 이재용씨는 조업과정에서 백혈병을 유발하는 공장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보았을 것이다. 종이 위에 글자로서. 차라리 그 사업장에서 한 달간 일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항공 조현아씨는 평승무원으로 돌아가서 한 달간 비특권적 차원에서 근무를 해보면 어떨까? 쇼라도 그런 일이 늘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구호를 외치거나 교육받는 것보다 환자 체험에 참여했던 직원들이 더 친절도가 높았다는 연구보고들은 꽤 많다. 이 역할전환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는 동화로 읽은 <왕자와 거지>일 것이다. 왕자가 거지가 되어보았기에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다는 이 낡은 이야기는 정말 가장 극적인 역할전환 체험이다.

중심부로 갈수록 주변을 잊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변두리 사람들의 삶은 잊혀지기 쉽다. 많은 관료들이 더 어려운 사람들의 삶 속에 더 깊숙이 들어와서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쇼처럼이라도 더 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 이제 다른 시장님이나 지자체 지도자들은 반지하방을 포함한 시민들의 현장에 사무실을 차려보길 권한다.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5위 해리 왕자가 10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것이나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이 한때 응급 헬기 조종사로 취업해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이루는 인사들이 곱씹어봐야 할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특권을 내세우지 않고 시민의 곁에 있을 때 시민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었다는 기분, 즉 사회적 치유가 작동되고 신뢰가 구축된다. 반면 한국인들은 우리 사회가 불평등·불공정·특권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믿는다. 관료, 재벌들이 몸의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권에 따른 경험 외에는 없다. 관용차만 타고 자가용만 타는 시장과 재벌 총수가 마을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의 요금이 얼마인지를 알겠는가? 무더위로 인해 새벽에 깨어나서 허탈감에 차오르는 피곤함을 알겠는가? 

흔히 기획자들은 사용자의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릴 때, 일시적이나마, 그 자신이 사용자가 되는 방법을 취한다. 시장을 가고, 군대를 가고, 현장을 가는 것은 사용자의 시야로 경험을 하여 정말 필요한 것을 찾는 발견과 통찰의 과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서가 아니라 몸의 감각이다. 몸의 감각은 시간과 함께 답을 제시하는 데 가장 솔직해서, 불편감을 비롯한 각종 진실을 가장 빨리 토해낸다. 역할전환 경험과 현장 행정은 혁신과 사회치유의 출발이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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