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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페미니스트의 “페미나치” 운운이나 홍준표의 “괴벨스 정당” 운운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최근 이런 반지성주의적 의미 왜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하다 명쾌한 응답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 미국 코미디계의 신성 트레버 노아의 발언에서였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정치 풍자 토크쇼 <데일리쇼>에서 “프랑스 정부와 갈등이 좀 있었다”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계 선수가 다수 포진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팀의 월드컵 승리를 축하하면서 “아프리카가 승리했다”고 던진 농담이 문제가 됐다. 프랑스 내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주미 프랑스 대사는 트레버 노아에게 항의 편지를 썼고, 이 발언은 개그를 넘어 미국식 다문화주의와 프랑스식 동화주의 사이의 날선 논쟁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대사는 노아의 언급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선수들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축구를 배운, 프랑스 시민입니다. 그들의 다채로운 출신 배경은 프랑스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다. 프랑스 대표팀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4-2로 꺾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파리 _ EPA연합뉴스

노아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들의 다채로운 출신 배경은 사실 프랑스의 식민주의를 반영하는 것이죠. 그들이 (애초에) 왜 프랑스인이 되었나요?”

아프리카계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과거 프랑스 식민지 출신이거나, 프랑스가 노동력 부족으로 곤란을 겪던 시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다. 특히 노동력 부족이 해소되고 실업률이 올라가자 프랑스 정부가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야 할 천덕꾸러기’로 취급했던 것을 생각하면, 틀린 지적은 아니다.

대사는 이어서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국민을 인종과 종교, 출신에 따라서 나누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피부색에서 아프리카를 보는 것은 그들의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태도이며 그것이야말로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이 발언은 시민 내부의 동질성과 평등함, 그리고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프랑스 헌법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인종적, 민족적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차이에 대한 고려 자체가 차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이민자 정책에 있어 동화주의를 추구해 온 것 역시 차이의 소거와 연결되어 있다. 공교육장에서 히잡을 금지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배경 탓이다.

노아 역시 프랑스 정부의 강경한 항의 아래 놓인 맥락을 이해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그 존재를 지운다고 해서 인종과 민족에 대한 현실적인 구분과 차별 역시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아가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는 동화주의 아래에서 과연 누가 프랑스인일 수 있는지 질문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흑인이 무직이거나, 범죄자이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었을 때 그들을 ‘아프리카 이민자’라고 부릅니다. 반면 그들의 아이들이 월드컵에 출전하여 승리를 안겼을 때, 그들은 ‘프랑스인’이 되죠.”

물론 미국의 트럼프 시대가 증명하고 있듯이 어떤 통치 철학도 식민주의의 폭력적인 영향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양성에 대한 미국식 찬양이 곧 차별에 대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노아의 풍자는 ‘동화’와 ‘다문화’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이민자 정책 논쟁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한 가지를 제안한다.

“백인들은 말합니다. ‘내가 하면 인종차별이고 트레버 노아가 하면 아프리카 승리에 대한 축하냐?’ 네, 바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전히 흑백 분리주의가 공고할 때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출생 자체가 범죄였던 것이다. 존재가 불법인 삶을 살면서 그는 유머와 해학을 통해 그 딜레마를 설명하고 그와 싸울 언어를 모색해온 사람이다. 프랑스 대사의 염려와 달리, 프랑스 선수들의 피부에서 아프리카를 보는 그의 관점이 오히려 인종차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 되는 것은 이 맥락 속에서다.

어쩌면 맥락이 전부다. 선정적인 언어적 선동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우리 역시 좀 더 맥락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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