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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실 대각선 위치에는 임용시험 준비실과 열람실이 있다. 때때로 저녁까지 내가 학교에 남아 있음을 아는 학생들이 공부하다 질문을 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두 번째 학기부터 한두 명씩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더니, 2년차 즈음해서 제법 여럿이 들르게 되었다. 학부시절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교수님들을 따로 찾아뵙고 질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수업시간에 쪽지시험만 치른 후 뒷문으로 살그머니 도망치려다 불려가 혼났던 기억 정도가 전부다. 그랬기에 스스럼없이 찾아와주는 게 좋았다. 아는 교수법을 동원하여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밤참으로 먹으라며 줄 과자나 초콜릿을 서랍에 준비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교편을 잡은 지 3년째 되던 가을, 중간시험 기간이었다. 당시 중요한 학술대회 발표를 앞두고 원고를 쓰느라 여러 날 동안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새벽녘 귀가하여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그렇게 있다 보면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 말해놓고도 막상 책상에 엎드려 졸다 깨어 빨갛게 자국 진 이마를 한 채 누군가와 마주하려니 편치 않았다. 집중해서 뭔가를 쓰다 다른 내용을 한참 설명하고 나면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서 반짝이던 발상은 지워지고 없었다. 차츰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노크소리에 표정이 굳었다. 아마 당시 학생들도 느꼈을 것이다. 전날까지 상냥했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다음날 피곤이 묻어나고, 어젯밤 “모르는 거 있으면 또 올게요” 했을 때 희미하게 웃던 선생님의 얼굴이 막상 오늘밤 찾아가자 종잇장처럼 구겨지던 것을.

결국 중간시험 전날, 최종 질문거리를 정리해온 학생에게 “내일이 시험인데 오늘밤에 질문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날카롭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 친구는 당황하여 얼굴이 빨갛게 된 채 죄송하다고 했다. 괜찮다고, 그냥 질문하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돌출적인 나의 반응이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내가 날카롭게 굴었던 것은 시험 전날엔 질문을 받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 그런 원칙은 세우지도 않았다. 만일 그날 컨디션이 좋았더라면, 그리고 마감을 앞둔 논문이 없었더라면 동일한 행동에 대해 시험 직전까지 열심히 공부한다며 흡족해했을 것이다. 그러니 원인 제공자는 나였다. 상담 가능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은 채 언제든 찾아오라 말했고, 실제로 용기 내어 몇 명이 질문하러 왔을 때 무척 반겼으니까. 그 열의를 매순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위를 받고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다. 선배들이 너는 몸집이 작은 데다 학생 이미지이니 수업 중 헤실헤실 웃지 말라 하셨다. “어른처럼 파마하고 정장을 입어라”라는 조언도 받았다. 그렇게 정장을 차려입고 입술을 근엄하게 일자로 만들다 한 학기 만에 결심했다. 카리스마나 도도함만큼 나와 동떨어진 단어가 없는데 애써 꾸며내기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카리스마가 없어서’ 더 다가서기 편한 사람이 되기로. 평소처럼 스웨터와 주름치마를 입고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 어느덧 복학생들보다도 열 살 넘게 나이를 먹으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란 카디건이나 멜빵치마를 입어도 학부생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상적인 거리와 간격 역시 직업적 연륜이 쌓이면 어느 순간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져 염려할 필요조차 없게 될지 모른다. 다만 미래의 그 지점에 다다르기 이전에도 여전히 난 누군가의 선생일 테니, 자신만의 일관성을 구축해가는 시행착오 과정 중에 만나고 헤어질 나의 학생들이 상처입지 않도록, 얕은 인성에서 발로한 열의일지라도 꾸준하게 이어가고 싶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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