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6월이 가기 전 이런저런 이유로 1987년 함께 거리를 내달렸던 친구 선후배들을 만날 일이 잦았다. 6월의 만남은 사실 지난겨울부터 잉태된 것이었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내내 친구들은 카톡방을 만들어 촛불집회 때마다 함께 모이기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성년 초기 혹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정치사회의식과 태도를 가진 집단’이라는 정치 코호트(cohort) 개념을 적용하자면, 우리는 ‘1987년’의 기억을 나누어 가진 코호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효과(aging effect)가 나와 친구들을 아주 비껴간 것 같지도 않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16’에 포함된 보고서인 ‘정치 태도와 행위의 세대 간 차이’에 따르면, 기득권을 쥔 1965~1969년생들은 그 아래세대인 1970~1974년생들에 비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빠르게 보수화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의 분석을 입증하는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30년 만의 모임에서 우리는 국정농단의 주역 노릇을 했던 동년배들의 이름을 줄줄이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드문드문 가사를 잊어버린 30년 전의 투쟁가를 함께 부르며, 나는 지나온 30년 못지않게 이후 3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라는 생각을 했다.
유엔이 2015년 새롭게 발표한 생애주기별 연령지표에 따르면 청년기는 18~65세로 확장됐다. 이제 50대 문턱을 넘어선 6월항쟁 세대는 늘어난 청년기를 어떤 청년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학교교육-취업-은퇴’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던 생애주기의 공식은 깨졌다. 서구에서는 생애주기를 재설계해서 ‘은퇴’에서 ‘교육’, 다시 ‘취업’으로 생애주기의 국면들을 반복적으로 오가거나 순환하는 삶의 방식이 제안되기도 한다.
20대의 뜨거운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그 기억에 붙박여 살아간다는 의미라면 그것은 보수화에 다름 아니다. 1987년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집약됐지만, 2016년 광화문광장에 내걸린 N개의 깃발은 ‘성소수자 차별 철폐’부터 ‘최저임금 1만원 실현’까지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요구들로 나부꼈다.
새로운 사회적 요청들을 수용해내기 위해 다시 배우고 도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지만 젊었을 때와는 달리 실패에서 회복하는 탄성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가족’이 가장 확실한 복지제도인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6월항쟁 세대는 경제능력이 없는 부모 세대와 취업이 어려운 자식 세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이런 복합적인 도전들에 맞닥뜨려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6월항쟁 세대는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진보하도록 바퀴를 굴린 세대로 남을지, 아니면 젊어서는 진보였으나 세월과 함께 보수화되어 사회의 전진을 가로막은 세대로 기록될지 기로에 서 있다. 6월항쟁 세대의 ‘나이 잘 먹어가기’의 과제는 어쩌면 30년 전 ‘조국’과 ‘민중’을 위해 ‘투신’하겠다고 다짐했던 것보다 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자기혁신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점잖은 중년, 강요 마라…우리는 아직 한창때야’라는 제목의 24일자 경향신문 커버스토리는 또 한번의 청년기를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50대의 모습을 소개했다. 미술학도로, 세계여행가로, 보디빌더로 각각 택한 삶의 사연은 달랐지만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공통점은 다시 시작한 청년기를 나눌 젊은 친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생 선배’로서가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우고 협력하는 조카나 자식뻘의 친구들.
긴 청년기를 살아가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6월항쟁 세대는 30년 전의 기억을 공유하는 동년배의 자폐적 단결을 넘어서 사회적 경험이 다른 세대와 연대하는 일부터 배워야 할지 모른다.
그러한 자기 해체의 과정을 6월항쟁 세대가 길어진 청년기에 이루어낼 수 있다면, 나이가 ‘계급장’이자 ‘낙인’인 한국 사회의 삶의 공기는 사뭇 가벼워질 것이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고]논산시 농업의 미래, 교육에서 답을 찾다 (0) | 2017.06.29 |
---|---|
[기고]찬밥 신세 한국 농업교육에 관심을 (0) | 2017.06.28 |
[정동칼럼]벌레에서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0) | 2017.06.28 |
[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파주 법흥리의 수리부엉이 (0) | 2017.06.27 |
[속담말ㅆ·미]남의 군불에 밥짓기 (0) | 2017.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