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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빛나는 사람은 많다. 그중에는 4위 선수도 있고, 2위 선수도 있으며, 예술감독도 있고, 자원봉사자도 있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들의 선수도 많다.

올림픽에서의 아름다운 사연은 1등들의 사연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 열대국가에서 온 한 명으로 이루어진 선수단부터 시작해서 우승을 0.01초차로 놓친 아쉬움에 가득 찬 선수, 이곳에 와서 갑자기 충수돌기염을 앓고 수술한 뒤 경기에 참여한 선수, 또다시 챔피언을 이어간 팀들의 우정, 민족의 화해 등은 모두 감동적인 소식이다. 저마다 지닌 온갖 사연을 갖고 평창을 찾아와 자신의 찬란한 인생 한순간을 쏟아붓고 간다. 그리고 그 모든 사연은 같은 무게로 아름답다.

차민규가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레이스를 마친 뒤 기록을 확인하며 만족해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오로지 금메달을 딴 사람들만 영광을 누리는 올림픽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1등만 살아남는다는 한국에서의 통설은 이제 부끄러운 과거 자화상의 잔재로 사라져야 한다. 1등은 여러 등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1등,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단지 잠시일 뿐이다. 선수들의 말처럼 기록은 언제나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1등의 영광은 1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 추억, 팀워크, 우정, 그리고 만남 등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피해의식을 가진 엄마는 ‘1등 아니면 죽는다! 우리 모두!’라고 협박하지만 그것은 상처의 흔적, 트라우마로 인해 왜곡된 어른의 인격, 파탄을 예고하는 흉터일 뿐이다. 4등, 4위도 1등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진정 그가 챔피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승경험이 많은 선수를 인터뷰해온 스포츠 심리학자 매슈 사이드는 선수들이 맛보는 특별한 행복감은 단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무엇인가를 끝까지 해내는 기쁨’에서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시 기억해주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기억은 ‘내 자신의 몸과 영혼에 각인된, 나 자신이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승리감’이라고 했다.

조정을 소재로 한 <안톤의 여름>이라는 청소년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쓴 이에리사씨는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꼭 누군가를 경쟁에서 물리쳐,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모두가 챔피언이다”라고 했다.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고, 자신이 되고픈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작업을 해냈다는 성취감, 이것이 인생의 큰 자산이다. 이런 심리적 상태에 도달하면 사실 타인과의 승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쉽게 지난번 올림픽에서 2위를 한 김연아와 이번 올림픽에서의 이상화 선수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것이 1등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눈물이었다고 한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성취는 때때로 성취자를 죽인다”고 했다. 단지 1등을 해야만 한다는 타인의 동기에 억눌려 1등을 성취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 것이다. 그간 우리는 이런 안타까운 희생을 청소년, 청년들에게서 보아왔다.

여전히 한국에는 이유 없는 1등에 목을 매고, 또 1등을 한 뒤에는 허무와 공허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자학과 거짓 자기로 만들어진 성공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불행뿐이다. 행복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단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정에서 온다고 한 바 있다.

베일런트의 하버드 졸업생 종단연구를 포함해서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나 홀로 1등’ ‘나 홀로 부자’가 행복하기보다는 ‘다 함께 친구’ ‘모두와 함께’가 더 행복하다고 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의 깊게 잘 들어야 한다. 잘났지만, 외롭고 불행한 병적 자기애의 사회에서 평범하고 겸손한 사람들의 사소한 사회가 더 행복하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사회적 우정 패러다임은 행복 전환의 중요한 제기이다.

우정이 넘치는 평등한 사회가 싸가지 없는 불평등한 사회보다 행복하다. 재벌회사 사장님 김씨도 동네에서는 아저씨이고, 그 회사원 이씨도 동네에서는 그냥 아저씨이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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