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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르 로렌첸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두 조 앞에서 올림픽 타이기록을 세운 차민규를 0.01초 차이로 제쳤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로렌첸은 기자회견에서 “앞에서 홈팀 선수가 올림픽 기록을 세워서 경기장이 무척 시끄러웠다. 그런데 내가 다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전광판에 내 기록이 나오자 경기장이 조용해졌다”면서 웃었다. “기분이 정말 쿨 했다”고 덧붙였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평창과 강릉에는 ‘쿨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메달의 압박감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이를 이겨내는 방식이 찰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엄숙함과 진지함만은 아니다.

클로이 김은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엄청난 기술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반원통의 경기장에서 가볍게 날아올라 빙글빙글 온몸을 뒤집고 비틀어 돈 뒤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클로이 김은 여유가 넘쳤다. 예선 경기가 열린 12일에는 경기 도중 트위터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적었다. 결선이 열린 13일에는 3차시기를 앞두고 “아침에 샌드위치 다 안 먹은 게 후회된다. 괜히 고집부렸다. 이제야 배가 고파서 화가 난다(hangry)”고 적었다. 1차시기 93.75점으로 사실상 금메달을 결정지은 클로이 김은 ‘행그리’라고 적은 뒤 3차시기에서 완벽한 연기로 98.25점을 따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왼쪽)이 21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예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팀과의 경기에서 스톤을 던진 뒤 김영미에게 스위핑을 지시하고 있다. 강릉 _ 연합뉴스

에스터 레데츠카는 평창 올림픽이 낳은 새로운 슈퍼스타가 됐다. 스노보드가 주 종목인 레데츠카는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다. 레데츠카는 대회전 레이스를 마친 뒤 멍하니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록이 잘못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함성이 멈추지 않자 그제서야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고글을 벗지 않은 채 질문을 받았다. 이유에 대해 쿨하게 답했다.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런 자리에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화장을 못했다.”

마르셀 히르셔는 ‘스키 황제’라고 불렸다. 6년 동안 알파인스키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다. 밴쿠버 대회 때 4위와 5위, 소치 대회 때 은메달과 4위를 했다.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다. 평창 올림픽에서 벌써 금메달 2개를 땄다. 알파인 복합과 대회전에서 소원을 풀었다.

오래 걸린 만큼 감격에 겨울 법도 했지만 히르셔는 쿨했다. “그동안 내가 4등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긴장을 즐기자는 말은, 사실 말만 쉽다. 긴장은 ‘배짱 약한 선수의 약점’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긴장은 경험으로 무뎌질 수 있어도 집중과 훈련으로 이겨내는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더 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대표팀 선수들은 이겨도, 져도 운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최민정은 500m 결승 실격 판정을 받은 뒤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끝내 참았던 눈물이 믹스드존 인터뷰에서는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이상화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레이스를 마친 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고도 또 울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두고 “스포츠는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스포츠는 딱 거기까지. 성적, 메달, 체면, 업적, 파벌 여기에 정치까지 얹어놓으면 그 무게만으로도 누구나 휘청거린다. 선전 중인 컬링 여자대표팀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보인다. 짐 덜고 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영미도, 영미를 부르는 은정도.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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