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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제에 갔던 건 거의 20년 전이다. 소리 녹음하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간 자리였다. 제대로 열리는 시골장터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굿이라는 것도 TV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었다. 큰굿이라 하면 당연히 무당이 작두를 타고 길게 늘어진 베를 몸으로 가르는 사위가 있는 줄 알았다. 그걸 눈앞에서 보게 된다니 설레는 건지 떨리는 건지 알 수 없었는데 막상 보게 된 굿은 전혀 달랐다. 심청굿이었는데, 이름만 굿이었지 창가 같았다. 우리가 다 아는 심청전의 내용을 그대로 무당이 춤과 소리로 읊고, 박수들은 그 뒤에서 풍물을 두드려댔다. 눈을 밝게 해 주는 기원을 담은 굿이라고 했다. 음산하고 귀기어린 분위기 같은 건 없었다. 작금의 전부가 모두 한낱 굿판이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그때의 관중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도 굿판을 채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그 노인들은 지금의 굿판을 보며 어떤 추임새를 넣을까.
대통령의 두 번째 담화문을 보면서 집안 어르신은 의지가지없어 나쁜 년에게 홀린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했다. 지지율이 5%로 추락한 날이었다. 그분은 여전히 5% 안쪽에 있었다. “이 아파트 사는 노인네들은 그래도 바꾸면 안된다고 다 그래.” 이유는 하나였다. 대통령이 바뀌면 평균 20만원 안팎의 노령연금이 더 이상 지급되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깊고, 그 불쌍한 딸의 신세팔이에 동요하고 설득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노령연금이었다. 애초에 그 돈에 홀려 던진 표이기도 했다. 그깟 20만원으로 나라를 팔아먹느냐, 노인네들이 나라를 팔아먹어서 젊은 애들은 일할 곳도 없고 살 곳도 없다, 20만원에 세상을 이따위로 만들었으니 자식들이 주는 용돈은 받지도 말아라, 독한 소리를 내뱉었지만 한편으로 섬뜩하다. 어르신이 사는 곳은 9평 임대아파트다. 기댈 자식이 있는 노인보다 폐지를 줍든, 공공근로를 하든, 구걸을 하든 홀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노인들이 더 많은 그곳에서 20만원은 ‘그깟’이 아니다. 어버이연합에 지급되었다는 일당은 얼마였을까. 역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고작 그만큼의 돈으로 판단과 성찰을 포기한 노인들의 삶이 참담하고, 고작 그 돈으로 판단과 성찰을 사버리는 자본의 정부가 아찔하다. 동시에 나는 그 어이없는 노인들의 삶이 자꾸만 예언서처럼 읽힌다. 자수성가 따위는 진작 불가능해진 사회의 비정규직으로 떠도는 청춘들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릴까. 우리는 돈으로 존엄을 바꾸지 않는 미래를 살 수 있을까. 전날의 뉴스에서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
단오제에서 본 굿은, 칼을 밟고 서는 무당춤을 상상했던 내게는 시시했다. 동석했던 무속학자가 말했다. 원래 이런 게 굿이라고. 모두의 기원을 하늘에 닿게 해 주는 춤사위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또 말했다. 무당은 원래 점을 치는 자가 아니라 기원하는 자라고. 이런저런 민족혼 말살 정책을 겪으면서 그 둘이 섞여 우리가 흔히 아는 굿판의 형태로 변형된 거라고 했다. 지금의 굿판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두의 액운을 물리치고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애초의 취지와 멀어진 것은 말살된 혼마저 비정상이라서 생긴 일이겠지만, 원형을 벗어난 굿에서마저 날카로운 칼에 올라서는 건 무당 자신이다. 벼린 칼날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기원을 대신 하는 게 무당이지, 그 칼을 주위에 휘둘러 제 안녕을 도모하는 건 백정과 다름없다. 그걸 모른 척 굿도 아닌 굿 앞에서 추임새를 넣었으니 눈이 밝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말이 있다. 애초에 그 말이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 떡을 누가 먹을 것인지, 지금 누가 먹고 있는 것인지는 알 것 같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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