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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은 뿌옇다. 10월28일 오후 광화문을 바라보며 세종로를 걸어 올라갔다. 광화문을 지나 효자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뒹굴었다. 평소 경복궁 주변을 걷다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이 상쾌해지곤 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날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내 마음은 분노와 처절함 사이를 오갔다.
대림미술관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담벽에는 전시 중인 닉 나이트의 사진 위에 “나는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인생관이 적혀 있다. 다시 효자로로 빠져나와 조금 걷다보니 건너편에 영추문이 보였다. 경복궁의 서문이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진화랑이 나왔다. 승효상을 비롯한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열두 집의 거주 풍경’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화랑 입구 바닥에는 양란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리본에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이라고 써 있다. 봉하마을의 노 대통령 묘역을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 듯했다.
경복궁 신무문 뒤로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전시를 보고 나와 다시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는데 검은 코트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경관이 나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어디 가시나요?”라는 검문에 나는 “부암동 갑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후 ‘청와대 사랑채’가 나왔다. 청와대 부근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과 전시관이 있는 건물이다. 그 부근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청와대 앞 교통정리대 위에 흰색 복장을 한 경찰의 모습이 보였다. 왼쪽으로는 분수대와 광장이 있고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상과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을 담은 조각 작품들이 서 있다.
광장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자 ‘무궁화동산’이 나왔다. 그곳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안가’(안전가옥)로 불렸다. 그 안가에서 1979년 10월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했고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통령을 위한 유흥의 장소였던 안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다. 그후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그곳에 기념식수를 했다. 그곳은 원래 청음 김상헌의 집터였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냐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라는 시조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김상헌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며 읊은 시조다.
무궁화동산을 빠져나오니 경복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창의문로를 걸어올라갔다. 경복고등학교 후문이 나왔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그린 겸재 정선의 집터가 그 학교 안에 있었다.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한편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싣고 온 버스가 일렬로 한 차로를 차지하고 있다. 다소 가파른 언덕길 정상 부근에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서 있다. 그는 1968년 1월21일 북한이 남파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 당시 방어하다가 순직했다. 그 위로 성곽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고 한양의 북문이었던 창의문이 복원되어 있다. 그 맞은편에는 수돗물 공급을 위해 쓰였던 가압장을 개조하여 만든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뒤에는 ‘시인의 언덕’이라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언덕에 서면 멀리 남산이 보인다. 창의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인왕스카이웨이로 이어지고, 그 아래쪽 동네에는 김환기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는 오래된 동네 방앗간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1월6일 오후 나는 동십자각을 지나 삼청동 방향으로 성큼 걸어들어 갔다. 건춘문을 지나고 청와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디 가십니까?”라는 정복 경찰의 무뚝뚝한 검문을 받았다. 이 길은 4·19 때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대가 몰려왔던 곳이다. 그때는 청와대가 아니라 경무대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 관저로 쓰였고, 미군정 시절에는 하지 군정사령관의 거처였다. 그러나 원래 이곳은 경복궁에 부속된 땅으로 왕이 풍년을 기원하며 손수 농사짓던 거룩한 터였다. 아무튼 4·19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그리고 약 1년 후 5·16쿠데타가 일어났다.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발걸음을 옮기는데 춘추관이 눈앞에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사과 담화문을 발표한 장소다. 그 뒤로는 대통령의 관저가 있다.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걷다보니 오른쪽으로 청와대 비서관들이 일하는 건물이 보였다. 잠시 후 왼쪽으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이 나왔다. 그 맞은편에 청와대 정문이 있고 그 뒤에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 본관이 보였다. 경복궁을 관람하고 신무문으로 나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과거에는 경복궁 안의 경회루 북쪽에는 분리벽이 세워져 있었고 청와대를 지키는 군부대의 막사가 있었는데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청와대와 직접 연결되었다. 신무문을 지나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 광장을 향해 내려가는데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20여명이 모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었다. 의원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떼라”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그때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마른 가지에서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수복 사회학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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