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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새끼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만 일단 자립할 능력을 갖추면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간다. 언젠가는 북극곰을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북극곰 역시 새끼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정말 지극한 모성으로 보살핀다. 때로는 자기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새끼를 지켜내려고 하는 모습이 눈물겨울 정도다. 하지만 새끼가 세 살이 되어 자립을 하면 어미는 죽는 날까지 새끼를 보지 않는다. 요즘 하는 말로 각자도생의 길을 완벽하게(?) 가는 셈이다. 

그걸 보면서 만약 사람들도 그렇게 지낸다면 부모 자녀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인간관계 전반에 갈등이 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인간은 독립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것이 경제적 독립이 됐든, 정신적 독립이 됐든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독립과 의존 사이에서 경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생겨난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이끌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혼자 살아가는 인구가 많다 보니 ‘홀로족’이나 ‘혼자 안녕하기’ 등의 신조어들이 생겨나는 것을 본다. 대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말들이다. 다만 그들이 불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고 한다. 물론 SNS의 시대이다 보니 늘 그런 쪽으로는 관계가 활짝 열려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사실 나의 외로움과는 무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외로움을 잊은 것 같은 착각만 들 뿐 돌아서면 더욱더 외로움이 커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고독을 이겨내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가장 좋은 밑거름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험들은 때로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지낼 수 있을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다. 고독을 통해 자기 성찰의 시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출처:Pixabay

물론 그러한 시간들은 인간관계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모든 면에서 고독은 때때로 우리에게 ‘홀로 있음의 자유’와 그 자유를 통한 새로운 사색과 변화의 시간들을 허락하곤 한다. 고독이란 자신의 에너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글을 읽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고독은 누군가의 말처럼 일종의 ‘나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독은 곧 내 창작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는 그것이 꼭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독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본다. 임상에서도 인간관계에 서툴고 상처 입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직면해야 할 외로움이 더욱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고독이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힘에 대해(때때로 우리에게 ‘홀로 있음의 자유’와 그 자유를 통한 새로운 사색과 변화의 시간들을 허락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그러니 혼자 있는 순간의 외로움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순간이 내게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해야 한다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내게 말하곤 한다.

나는 고독에 관한 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우선 고독이란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강을 건너지 않고는 제아무리 거창한 말을 입에 담는다 해도 다 어린애 장난이다.”

물론 창작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의 결연함이 묘하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고독에 관해서는.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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