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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썩 좋지 않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과 반대로 하기)’ 정책으로 성사 직전까지 간 북한과의 수교를 틀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이라고 부른 것은 지금껏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양국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8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은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정점은 2006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북한과 종전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해놓고 틀어버린 것이었다. 참다못한 노 전 대통령은 이듬해 시드니 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 부시를 압박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종전선언에 대해 좀 더 분명히 밝혀달라”고 하자 부시는 “더 이상 어떻게 말하느냐”며 거부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부시는 자서전에서 “몇 가지 주요 현안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미 경제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 재임 기간 한·미관계에 가장 많은 시끄러운 이야기가 있었다”면서도 “갈등이 표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간이었지만, 내용에서는 가장 많은 변화와 결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시드니 정상회담 때 부시는 노 전 대통령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며 “우리 둘은 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부시는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2002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회담 장소에 먼저 나와 DJ를 기다렸다. 인간적으로 소탈한 면이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오는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 방산업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부시 전 대통령이 추도식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부시는 자서전에서 “2009년 그(노무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고 애도한 바 있다. 부시는 지난해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위트 넘치면서도 애도의 마음이 절절한 추도사로 세계인을 울렸다. 생사가 엇갈려 12년 만에 재회하는 자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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