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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봄날의 오후는 언제나 치열했다. 봄볕은 복병처럼 숨죽이고 있던 잠을 부추겨 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을 공략했고,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아이들을 다그쳤다. 선생님들은 대개 교실 안에 빽빽하게 박혀 있는 70여명의 동태를 무시로 살피다가 머리를 책상 위로 떨구는 이는 물론이고, 저도 모르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어쩌지 못하는 이까지 발본색원하여 가차 없이 깨웠다. 그들의 내공은 무림의 고수 못지않았다. 칠판에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던 이가 느닷없이 뒤를 돌아 손에 든 분필 토막을 튕겨 교실 맨 끝자리에 엎드려 있는 학생의 정수리를 정확히 맞히는 신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 시절 교실 안 풍경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조는 학생들을 깨워가면서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 자라도 놓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하던 교사와 그 말을 의심 없이 따르던 학생들이 있는 곳. 교실이란 그런 곳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해 마침내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수많은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실 풍경은 예전과 달랐다. 옛날 선배들이 손에 쥐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던 분필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태연하게 엎드려 잠을 잤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묵인하기를 바랐다. “한 아이가 너무 자서 어머니와 상담을 했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그러시더라고요. 학원이 늦게 끝나서 그러니까 그냥 놔두라고요.”

그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간에 회자하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그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학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는 뜨거운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여전히 그런 학생이 있고,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대학 교문만 겨냥하고 있다면, 아이들을 깨우면서 좋은 대학 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사회가 그 말에 공조한다면, 교실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스승의날, 잠든 교실을 얘기하고 보니 씁쓸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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