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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일 년에 딱 이틀, 유대교가 정한 속죄일인 욤 키푸르와 기독교의 축일인 크리스마스에만 문을 닫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유난히 깊은 침묵에 빠져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4000켤레의 낡은 신발이 뒤죽박죽으로 켜켜이 쌓여 벽을 이룬 곳. 성인 남자의 출근용 구두, 젊은 여성이 신었을 법한 펌프스, 소년의 운동화,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아이가 신었을 법한 꼬까신…. 폴란드 마자넥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벗어 나치 군인에게 압수당했던 것들이다. 신발 더미에서는 신발 주인의 체취 같기도 한 고무냄새가 스며 나와 관람객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멍해진 관람객들을 돕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년의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신발의 주인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져 갔으며 어떻게 자신들은 살아남았는지를 담담하게 증언한다.

이철성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찾아 박 열사가 숨진 인권센터 509호에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부터 청와대 국민 청원 페이지에는 ‘경찰이 운용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달라’(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는 국민 청원이 진행 중이다. 1987년 스물두 살 청년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 도중에 살해당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영동 인권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경찰이 운영하는 기관이다.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인권단체들이 시민들을 위한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시민들 대다수는 경찰의 안내를 받는다.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다가 그나마 2017년 7월부터 토요일 개방이 이뤄지고 있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경찰의 다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온전히 실토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남영동 인권센터’는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 스스로 ‘인권의 메카’로 부르는 인권센터의 1층 홍보 전시물은 1985년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1985년 민청련 김근태 의장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23일 동안 조사(고문)받은 것이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1.12.30 타계 소식이 있자 추모하기 위해 그가 고문을 당했던 5층 515호실 앞에 인권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올려놓은 조화가 화제가 된 바 있다.”

23일간의 고문과 경찰이 사후에 올려놓은 조화를 등가로 연결하는 이 두 문장 속에서 “이런 잔인한 고문이 아니라면 정말 죽음에 처넣어지는 것, 고문 없이 살해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겠다”(김근태 저 <남영동> 중)는 피해자 김근태의 비명은 말끔히 소거된다.

박종철 열사가 죽어간 509호실은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고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세면대, 변기가 놓여 고시원 방 한 칸을 연상시키는 이런 방으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칠성판’이라고 불리는 고문대 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관람객들은 알 수 없다. 누우면 세면대 위로 얼굴이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된 이 칠성판 위에서, 두들겨 맞아도 맞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담요로 꽁꽁 묶인 사람들이 얼굴에 수건이 덮인 채 샤워기로 쏟아지는 물이 입과 코를 막는 물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은유가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도 은유가 아니다. 워싱턴 DC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신발 무덤과 그 역겨운 고무냄새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범죄의 잔혹함에 토할 것 같은 실감을 갖게 만드는 것처럼, 한국의 공권력이 독재 권력의 손발이 되어 저지른 잔혹한 고문도 피해자의 시선으로 세세하게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경찰의 안내가 아닌 살아남은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난 시대 한국 땅 곳곳에 존재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어떤 폭력이 저질러졌는지 지금의 관람객들에게 증언되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사람들이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5층의 조사실로 끌려 올라갔을 때 밟았던 좁은 나선 계단은 72개다. 악은 구체적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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