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이와 영화 <서치>를 보기로 한 날, 낡아 고장 난 휴대폰을 먼저 바꾸기로 했다가 기기 변경 중에 휴대폰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잃어버렸다. 즉흥적인 결정이라 백업을 미처 하지 못해서 변경할 기기만 골라두고 다음 날 다시 올까 잠깐 망설였으나 아무 문제없이 데이터를 모두 옮길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사라진 데이터는, 모든 사라진 것들이 그렇듯 그중 가장 중요한 데이터이다. 물론 나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데이터인 줄을 사라지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그날은 저녁 내내 앓았다.

<서치>는 미국 한인 가정의 가장 데이빗 킴(존 조)이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딸이 운전면허증을 위조했다는 경찰의 소식을 접한 데이빗이 위조 면허증을 보고 있다(오른쪽). 소니픽처스 제공

영화를 본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데이터 복구센터에 맡긴 저장장치마저 복구 불가라는 소식을 듣던 날, 오기로라도 그 영화를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서치>가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실종된 딸을 데이터로 찾는 줄거리라던가. 내가 잃어버린 건 딸이 아니라 데이터였지만, 어째 내 심정에 맞장구라도 쳐줄 것 같아서 아이와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마침 아이도 SNS에 부쩍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이라 꼭 같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후의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 

<서치>는 알려진 간략한 줄거리로만 언급하면 아내를 잃고 혼자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실종된 딸을 찾는 이야기다. 딸이 실종된 후에야 자신의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가 일차적으로 검색한 데이터는 딸의 수많은 SNS 계정들이다. 그 계정들을 통해 비로소 딸의 현실과 직면한 아버지가 비통해할 때, 나는 아이에게 닿을 길 없는 부모의 심정에 빙의 수준으로 공감을 했다. 그 안타까움이라니, 눈물과 콧물을 멈출 수가 없는데, 바로 옆에 앉아 영화를 보던, 인터넷과 SNS의 세계에 최근에야 발을 들여놓은 아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인터넷 계정들이 그리 허술하게 털릴 수가 있다니!” 그리하여 영화의 감동에 기대, 내가 너를 감시하는 데 쓰지는 않을 터이니 만일을 대비해 네 계정의 비밀번호와 친구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도 못했다. 아니다, 실은 했다. 아이는 못 들은 척했고, 나는 어쩐지 며느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물어본 시어머니가 된 기분이라 스스로 무안해서 다 농담이었던 것처럼 허풍을 떨었다.

아이가 처음 SNS를 시작했을 때, 아이의 휴대폰을 엿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 쉽게 들켰다. 기기 작동법이 익숙하지 않아 훔쳐 본 내용도 없는데 검색 기록만 남았다. 기분 나빠하는 아이 앞에서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마음으로 변명과 사과를 거듭한 이후로는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 들여다보는 게 오히려 아이를 지레짐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다. 오해만 쌓일 게 뻔했다. 대신 자신의 계정은 안 보여주면서 엄마의 계정 속 내용은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나의 SNS 계정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육아일기처럼 쓰던 것들이니 내 것이되 아이 자신이 기억 못하는 아이의 일기이기도 하다. 내가 보일 수 있는 만큼을 보여주고, 아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보이는 진심이 많을수록 아이도 나와 공유하는 진심이 많아질 거라는 기대도 물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 같은 유혹에 시달린 부모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의 세계를 쉽게 엿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영화 자체가 악몽이었다는 평도 있다. 영화가 말한 데이터는 그러나 내면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니 세계를 공유한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줄곧 인터넷을 검색하여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해결하지만, 그러나 영화의 중요한 갈등을 풀어준 건 온라인 속 정보가 아니라 동생이 전해준 한마디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딸이 삼촌인 동생에게 직접 드러낸 실재하는 말이기도 했다. 영화는 인터넷에 갇힌 세상을 그리지만, 그러나 진심은, 진실은 그 바깥에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고루한 진실이지만 그 진실을 믿는다. 휴대폰의 데이터는 복구할 수 없지만, 그날의 기억이 내 안에 여전히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지혜 | 소설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