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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사건이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2016년 무명화가 송모씨가 2009년부터 조영남의 조수로 수년간 그림을 대신 그렸다고 폭로하자 검찰과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가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사건의 핵심은 조영남이 조수를 고용한 이유다. 검찰은 (미술)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상품 거래의 맥락에서 그가 조수를 왜 썼는지, 그것이 합당한지를 판단하고자 했고, 미술계는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가 조수를 고용한 이유와 그 합리성 혹은 불합리성을 가늠하려 했다. 그렇지만 어떤 맥락에서 판단하더라도, 그리고 그 결론이 조영남에게 책임이 있다고 내려지더라도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가수 조영남. 연합뉴스

미술시장에서 작품이 거래될 때 컬렉터들은 작품 제작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조영남이 이를 어겼으므로 그를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사실 고지 의무는 작품 판매를 중개한 갤러리와 화랑에도 있다. 따라서 상품 거래의 측면에서 그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결코 조영남을 주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조영남을 변호한 진중권은 그의 작품이 개념미술이라고 주장하며, 개념미술은 ‘개념’을 최상위에 두어 작품 제작을 타인에게 맡기기도 하므로 그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대량생산’하는 앤디 워홀(워홀의 팝아트 역시 개념미술에 포함된다)의 작품 제작 방식과 조영남의 것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워홀이 조수에게 작품 제작을 맡긴 것은 예술작품의 유일성, 원본성이 예술과 예술가를 신화화·신격화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워홀은 미술계를 비판하려는 의도(개념)를 전달하기 위해 조수 고용과 대리 작품 제작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즉 조수 고용과 작품 대리 제작은 개념의 일환이었다. 워홀과 조영남의 경우를 비교한다면, 조영남이 화투를 그렸는데, 그가 왜 화투를 차용했는지, 화투를 그리는 것과 조수를 쓰는 것이 어떤 연관을 가지며 궁극적으로 조영남이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를 비교해야 한다. 개념미술의 개념은 이 모든 것들의 총체다. 화투 그 자체는 개념미술의 개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조수에게 “화투를 그리라”고 지시한 것을 개념미술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진중권은 개념미술가들이 작품의 제작을 대리로 맡겼고 이것이 현대에 관행으로 고착됐다며 조수 고용을 합리화하고자 했다. 개념미술가들이 오브제 자체를 대리 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념미술에서 실행(작품 제작)은 오브제 제작 과정은 물론이고 그것을 전시장에 배치, 설치, 전시하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작가는 주어진 전시장의 상황이나 가변적인 전시장의 여건에 따라 애초의 구상을 변형하기도 했고, 사전에 결과물의 최종적 형태를 예상하며 오브제의 제작 주문을 맡겼다. 그러므로 진중권의 주장처럼 작품 제작을 기계적으로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구분할 수 없다. 결국 조수 고용과 그 합당함은 미술사적 맥락에서도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개념미술로 간주할 수 없다고 해도 이것이 사법적 처벌의 판단 근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조영남을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전문미술인이 관행이라는 표현을 들먹이며 개인의 잘못을 면책하고자 미술사를 도구화한 것은 우려할 일이다. 또한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관행이므로 무죄’라는 결론은 사회적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또한 분명한 것은 사법적 처벌의 판단 근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사건 판단의 역할을 사법 권력에 위임하는 것은 추후 미술계에 예상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오경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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