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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치유의 광장

opinionX 2019. 1. 9. 10:19

지난해의 마지막 날, 나는 강남의 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취재 때문에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몇 군데의 심리상담소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내가 유독 그런 곳만 방문한 건지, 대부분의 심리상담소가 그런 곳에 있는 건지, 찾아가는 곳마다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들만 늘어선 오피스텔에 있었다. 사무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직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상담사 혼자만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개의 상담이 일대일 만남이니 당연할 수는 있는데, 굳게 닫힌 오피스텔 사무실을 여자 혼자 방문하는 데에는 일말의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곳에 지인이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럴 텐데, 만나는 사람이 그전까지는 모르던, 누군가의 소개가 알고 있는 전부인 낯선 사람이라면 공간의 폐쇄성은 유독 강하게 와 닿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안에 누가 있을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 특이한 사람도 많다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실제로 우려했던 불운을 겪은 적은 없고, 오히려 문을 열고 나면 그 이전의 의심과 의혹이 미안해지기 마련인데도 번번이 그렇다. 특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 정도의 경우는 일상의 만남에서도 존재한다.

그날도 역시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친 만남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분이 묘해졌는데, 우울증 이력을 가진 이가 자신의 전문의를 흉기로 살해한 기사를 읽게 된 탓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건 새삼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만 있는 사무실에서 마음을 앓는 이를 기다리는 상담사들의 마음도, 그 복도를 걸어서 처음으로 문을 열어야 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환자와 의료진으로 붐비는 대형병원도 환자들의 폭력에 그토록 무방비 상태라면 저런 곳은 거의 사각지대에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우울은 왜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치료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닫힌 공간은 여러 의미로 위험해 보인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이런 형태의 심리상담소가 매우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상담소를 찾아가는 이가 제법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심리상담 문화가 생각보다 꽤 보편화되어 있는 셈인데 특이한 건 대부분의 상담이 개인 상담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입원을 필요로 하는 중증의 상태가 아니라면 대체로 병원을 꺼렸다. 개인 심리상담의 비용이 병원보다 높은 경우에도 그렇다.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병원 진료를 받을 시 남는 치료 이력과 약물 처방에 의존하는 병원의 진료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대안처럼 선택되는 많은 개인 상담소들은 과연 적당하고 합리적인 치료를 받기에 안전한 곳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면허제가 아닌 자격증제로 이뤄진다. 물론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일정 시간의 연수 등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어느 곳이 신뢰할 만한 곳인지는 경험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우울과 공황이 감기만큼이나 흔한 현대인의 질병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질병에 대한 대책이나 치료에 대한 공신력 있는 안내는 딱히 찾을 수가 없는 셈이다.

우울을, 마음의 병을 광장으로 끌어내자는 말은 정말 조심스럽다. 생각해보면 그 병은 오래전부터 광장에 나와 있다. 단지 처벌받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족들은 그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뜻이 “마음의 고통이 있는 모든 분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는 데 있음을 되새겨주는 발표를 해 마음 아프게, 그러나 더할 수 없는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고통이 끌려나온 광장이 처벌의 광장이 아닌 치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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