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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 문화부 차장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이었던 김유경씨(가명)는 지난 4월 <청춘연가>란 소설을 펴냈다. 2000년대 중반 혼자 탈북해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인 김씨는 “내 고향(조국)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써 이해와 연민을 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북한 출신 작가가 자신의 탈북 경험과 주변 동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탈북자들의 속내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소설의 어디를 봐도 탈북은 이념과 별로 상관이 없다. 주인공 선화는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현모양처 어머니 사이의 외동딸로 곱게 자라 수학교사가 됐으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대를 겪으면서 몰락한다. 당에서 주던 배급이 끊어지자 어머니가 채소장수로 나섰다가 병을 얻고 아버지도 쓰러진다. 병든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의 돈을 받고 중국으로 간 뒤 잔인한 중국인 남편을 만났다가 탈출해 남한으로 온다. 선화의 주변 인물도 비슷하다. 스무 살의 경옥은 배고픔에 못이겨 꽃제비로 살다가 국경을 넘었고, 가장 부유한 미선네 가족은 당 간부 신분으로 중국에서 무역을 하던 아버지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탈북의 길을 택했다.

탈북의 중요한 동기는 경제적인 욕망이다. 북한경제의 파탄으로 인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감내하기 어렵거나, 혹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돈맛을 본 경우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국경을 넘는 난민과 이주민의 행렬은 전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도 수많은 이주 노동자가 있는데 이들에게 조국을 배신했다는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폭언에 사과하는 임수경 ㅣ 출처:경향DB

최근 벌어진 임수경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막말 파문’에는 탈북자를 전향자, 변절자로 보는 이데올로기적 낙인이 찍혀 있다. 인간을 이념의 부속물로 바라보았던 냉전시대의 유산이 보인다. ‘주사파’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임수경 의원의 발언은 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 논의의 여지가 없다. 그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대한민국에 왔으면 조용히 살아라” “변절자”라는 말을 했다. 변절자란 말은 탈북자를 향한 게 아니었다고 부인했지만, 발언의 맥락을 보면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발언을 보면 임수경의 문제는 종북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몰이해다. 배고픔으로부터의 탈피를 폄훼한 것이다.

임수경에 대한 탈북자들의 기억은 ‘통일의 꽃’이기보다 ‘자유의 여신’이다. 1989년 방북 당시 그의 옷차림과 태도, 연설은 북한 주민들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유의 느낌을 선사했다. 한 탈북자는 “계속 옷을 갈아입는 걸 보고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옷을 갖고 왔는지 의아했다”고 증언한다. 인간이란 그렇다. 선생님이 아무리 진지하게 수업해도 책상 밑에서 손장난을 하는 학생처럼 분단·체제·통일 등의 무거운 단어들 아래 일상적 관심, 원초적 호기심, 새로움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다.

임수경과 탈북 대학생 간의 언쟁이 종북이라는 마녀 사냥과 매카시즘이라는 대항 논리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번져나가는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지독하게 이념적이다. 탈북자 개인의 삶을 빼놓고 친북과 반북의 논리가 부딪치면서 한국의 정치판은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냉전시대의 한가운데로 퇴보했다.

탈북자는 정치적 망명객보다 경제적 난민에 가깝다. 인간다운 삶을 꿈꾸면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 이주노동자나 결혼여성처럼 그들 역시 남한으로 왔다. 그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외국인만큼의 관심과 배려조차 보이지 않은 게 아닌지 점검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탈북자들 역시 정치적 행동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찾기에 보다 주력한다면 그것이 임수경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벌이는 국내정치의 함정에 갇히지 않는, 보다 해방적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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