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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이듬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생애 첫 투표를 한다고 들떠 있는데, 선거일보다 며칠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에게는 투표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선거에 대해 이러저러 떠드는 친구들 속에서 혼자 소외된 기분에 꽤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일이, 투표도 하지 못해놓고, 내 생애 첫 번째 선거일이 되었다.

그다음의 선거는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선거가 있는 날마다 아버지가 새벽 일찍 우리를 깨웠던 기억만 있다. ‘투표는 꼭 해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신념이자 소신이었다. 그래서 어물거리다가 시간을 놓치는 법이 없도록 자식들에게 투표권이 생긴 후에는 우리까지도 독려해서 투표소에 데려가시고는 했다. 잠도 덜 깬 눈으로 서늘한 투표소 복도에 서 있던 몇 번의 풍경이 지금도 선하다.

그렇게 우리를 데려간 아버지가 찍는 정당은 늘 한결같았다. 나와는 다른 정당. 한 번도 서로에게 물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정치 성향에 대해서 가족끼리 자주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도 어쩌다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 생각이 달랐다. 그러니까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와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애들이 투표를 이상하게 해서 분열이 된다’는 그런 오랜 지적들이 우리 가족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아버지는 우리에게 한 번도 당신이 지향하는 바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 젊은 것들 사람 뽑을 줄 모르니 투표 같은 거 하러 가지 말라고 할 법도 한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당신과 다른 사람 뽑을 줄 뻔히 알면서 그 줄에 세워놓을 생각을 했을까. 여쭤본 적이 없어 그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태도에 깃든 것이 일종의 위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사회의 구현을 위해 당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로막지 않는 것, 그것이 가끔은 그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에 대한 강한 신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런 태도가 시민사회의 공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공립학교를 잠깐 경험할 일이 있었는데, 미 대통령 선거를 치르던 시기였다. 주별로 각당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들에게 민주·공화 각당 경선 후보들의 공약이 담긴 선거 자료집을 나눠주고,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검토하여 에세이를 쓰는 숙제가 주어졌다. 인상 깊은 건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누구를 뽑겠는가” 혹은 “각각의 공약이 어떻게 타당한가”를 묻기 이전에 이들에게 주어진 피선거권의 자격을 포함하여 현 선거제도가 타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 점이었다. 선거 연령에 대한 질문도 당연히 포함되었다. 나는 그 질문이 무척 신선했는데, 그 질문을 본 순간 선거가 단지 우리를 대표할 누군가를 뽑는 것만이 아니라 누가 우리 사회의 시민인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묻는 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수업과 질문이 자연스레 가능하다는 점도 충분히 놀라웠다.

만 18세 이하 선거권이 통과되었다. 당장 총선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유효표의 등장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보다는 새로운 시민의 유입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던질 표의 향방은 결국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의 몫일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선거교육은 각 정당의 득실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묻고 고민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환영한다, 젊은 시민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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