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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요즘은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도소 수감자들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깨끗하고 조용하면서 다른 죄수들과 동떨어진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비용은 1박에 82달러.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나 홀로 운전자’라도 돈을 내면 2명 이상 탑승차량을 위한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교통량에 따라 다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8달러다. 당일 바로 진료받을 수 있는 의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도 판매된다. 연간 1500~2만5000달러 수준이다. 미국으로 이민할 수 있는 권리는 50만달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수 있는 권리는 15만달러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 부자들의 생활은 편리해지겠지만 정의와 공정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지고, 사람들의 도덕 관념도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죄를 지어도 가난한 사람은 더 열악한 감방에서 생활해야 한다. 회원 고객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넘긴 의사들은 기존 진료를 줄일 수밖에 없어 결국 서민의 병원 이용 문턱이 높아진다. 샌델은 “부유함의 유일한 장점이 요트나 스포츠카를 사고 환상적인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라면 부의 불평등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 좋은 의료, 안전한 이웃들에 자리 잡은 주택, 엘리트 학교 입학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지면서 부의 분배가 점점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들에게 줄을 잘 서라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되,

특권을 가진 사람이 오면

순순히 양보하라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 트렌드도 다르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파로 붐비는 토요일 오후에도 줄 서는 수고 없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웃돈을 주고 ‘특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다. 항공사 발권 창구나 비행기 탑승구의 퍼스트 클래스가 놀이공원까지 확대된 셈이다. 이제 어린이들에게 줄을 잘 서라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줄을 서서 이용 순서를 기다리되, 특권을 가진 사람이 오면 순순히 양보하라고 해야 한다.

미국 대학들만큼 노골적인 기여입학제는 아니지만 돈으로 사고파는 한국의 사교육 프로그램은 부자 자녀의 명문대 입학 확률을 높인다. 수십억원을 주고 고위 판사나 검사를 지낸 ‘전관’ 변호사를 고용하면 같은 죄를 저질러도 처벌은 가볍게 받는다. 돈과 권력은 늘 함께 움직인다. 사업가와 유착된 고위 관료,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공천 장사를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까. 돈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명예도 거래된다. 재벌이나 대기업 회장 치고 웬만한 대학의 명예박사 아닌 이들이 없다. 학위의 대가가 무엇일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스포츠대회에 붙이는 이름도 거래된다. 한국야구위원회가 주관한 지난해 프로야구 리그 공식 명칭은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였다. 서울대 경영대학 건물 중에는 LG관, SK관이 있다. 서울대가 공짜로 건물에 기업 이름을 붙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은 사람도 돈으로 평가한다. 2년 전 중견기업에서 퇴직해 마을버스 운전을 하는 내 친구의 노동력은 한 달에 300만원이다. 특별한 기술과 자본이 없는 50대 남성의 가치는 이 수준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의 몸값(4년간 8000만달러)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다. 그러나 내 친구는 그의 팔순 노모가 세상에서 최고로 믿고 의지하는 아들이고, 딸의 존경을 받는 행복한 아빠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과거보다 점점 더 많아지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 우정, 양심, 건강 등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면 평화, 민주주의, 투표권 같은 것은 누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넘겨줄 수 없다. 어머니가 손수 끓인 된장찌개와 여섯 살 조카가 괴발개발 그려 보내준 연하장처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있다. 경자년 새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창민 디지털뉴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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