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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역 지하에 결혼식장이 있었다. 역 대합실 1층에서 이어진 긴 지하 터널을 통과하면 거짓말처럼 결혼식장이 나왔다. 조도가 낮아 희읍스레한 터널 끝 유리 격자문 안쪽에는 한낮 햇빛처럼 밝은 빛이 아롱거렸다. 그 문이 열리면 미지의 세상이 있을 것 같은, 혼자 길을 걷다 둘이 만나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세상을 떠난 친척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런데 키가 커서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그의 선한 얼굴이 신랑의 모습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꼬마였을 때 서너 번 보았을 뿐이고, 친척 아저씨가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주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랑을 단박에 알아봤다. 한때 청년이었지만 노인이 된 친척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였다. 쌀자루를 번쩍 들어 얹던 어깨는 조붓해지고, 까랑까랑하던 목소리는 느려지고, 꼿꼿했던 걸음은 수굿해진 노인들도 모두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이들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결혼식장을 나와 다시 긴 터널을 걸어서 다시 기차에 올라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나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나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른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엄마와 똑같아 울었다는 이가 떠올랐다.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슬펐다는 그의 말에 나는 공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고 보면 대개의 사람에게 삶이란 부모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얼굴은 닮더라도 부모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이들의 시간이 좀 더 나은 시간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아무튼 결혼하고 새롭게 길을 떠나는 청년도 그의 아버지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이 세상의 모든 청년이 시속 300㎞로 내달리는 KTX처럼 부모로부터 더 빨리 달아나 부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그것이 인간의 진보이며 역사일 테니.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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