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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숙명여대 석좌교수



‘공짜’ 지하철을 타게 되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무엇보다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라가 있으니 생전에 이런 대접을 받게 되는구나, 그러면서 노인을 배려하는 이런 따뜻한 복지가 계속되자면 나라 살림에 주름살이 없어야겠다고 기도한다. 미안하게 생각하는 때도 없지 않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데 대접을 그대로 받는 것이 염치없는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하철의 노약자 보호석 주변의 수많은 노인들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때는 이 늙은 것들이 다음 세대에 짐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도 한다. 

신임 김 총리가 작심한 듯, 현행복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노인들의 공짜표도 언급했다. 그는 “약자라고 무조건 봐주지는 말아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혜택받는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지하철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데 65세 이상이라고 무조건 공짜 표를 주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노령수당도 문제삼았다. 그의 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돌봐주는 복지여야 하고, 정작 필요한 사람은 도와주되 부자들에게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의 복지를 언급했다. 





그의 발언의 의도는 수긍 못할 내용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동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 정치인들에 비하면 꽤 용기있는 말이다. 
그의 발언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따지는 약삭빠름이 안 보였고, 청문회 때의 자신을 향해 가졌을 국민의 부정적인 의식도 개의치 않았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그의 발언은 이 나라 공직자들의 귀감이 될 만했다. 그런 소신에 존경심까지 생긴다. 





총리의 발언이 돌출적인 것이 아니고 또 개인적인 소신을 밝힌 것이 아니라면, 발언에 앞서 더 숙고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있다. 발언 후 시중 여론에는 수십조에 이르는 부자감세를 그대로 둔 채 행한 그의 발언이 과연 균형잡힌 것인가 하는 반응이 있었다. 
노령수당을 시비하기 전에 공무원 월봉에 복지수당이 필요한 이유도 숙고해야 했다. 총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지하철 혜택을 못받는 농어촌에 더 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한편 지하철의 적자문제와 관련, 이런 생각도 했다. 듣건대 서울지하철에는 노인의 공짜표로 연간 2천억원이 넘는 적자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거금은 부가적 효과를 유발하지 않는가. 아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보다 몇 배의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 몇년 전 공짜표를 걱정하는 고위공직자에게, 그 액수가 엄청나다 하더라도 노인들을 뒷방살이 시켜 스트레스 등으로 생길 사회적 비용에 비교하면 훨씬 적을 것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뜨아해 하기에 이렇게 말했다. 공짜표는 노인들을 지하철로 가게 했고 건강을 유지하게 했다. 노인들이 집에 틀어박혀 있음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족간의 갈등까지 고려하면 공짜표는 그런 갈등을 예방하는 효과도 유발했다. 
노인의 외출은 가족간의 마찰을 줄였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줄였다. 이것은 몇 천억원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효과다. 이를 알았기 때문일까, 부모를 모신 서울시의 한 간부는 지하철이야말로 일등효자라고 성언했다.  

여기서 지하철 공짜표가 한국의 노인복지의 수준이나 한국 복지의 현주소, 한국의 높아진 국격을 의미한다는 말은 불필요하다. 지금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지하철 공짜표 세대가 피땀흘린 대가라는 속보이는 말도 하지 않겠다. 
다만 경제적 이해득실로 봐서라도 지하철 공짜표에 투입되는 재정 효과만한 투자가 있는지를 묻고 싶다. 휙휙 표를 내던지듯이 하던 매표구 직원의 무례한 행동으로 자존심 상했던 시절, 이왕 노인들에게 무료권을 주려면 자존심을 살려달라는 건의를 받아 시니어카드를 도입한 배려에 고마워했던 심정이 총리의 ‘사리분명한’ 발언으로 공짜표 승차가 더 수치감을 느끼게 될까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외출할 때마다 승용차를 이용하느냐, 지하철을 이용하느냐 고민한다. 그러나 승용차 유혹을 뿌리치고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늙은이로서의 사회봉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 

총리의 소신에 따라 지하철 공짜표에 변동이 생긴다면 혹시라도 노인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교통체증, 대기오염이 더 심화되지 않을까 염려도 해 본다.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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