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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이임혜경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

최근 ‘조두순 사건’ 등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회 전체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인 조씨에 대해 법원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지만 잔혹한 범죄에 대한 국민의 공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급기야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서는 법원의 양형제도와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정치권에서는 성폭력범을 상대로 ‘화학적 거세’ ‘평생 전자발찌’ 등 더 강력히 처벌하는 방안들이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의 억울함과 국민 법감정 차원에서라도 지금의 양형은 너무 낮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모든 관심이 가해자의 처벌 문제에만 휩싸여 있고 정작 피해자의 인권이나 사후 보호·지원 문제는 뒤로 밀려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건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처벌이 아닌 다른 쪽에서 찾자는 반론이다. 이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냄비처럼 끓었다가 식는 여론과 언론의 ‘마녀 사냥’식 보도에도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지난 10일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45)와 ‘처벌 강화보다는 가해자 교육과 피해자 지원대책이 보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이임혜경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39)이 만나 의견을 나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왼쪽)와 이임혜경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이 
조두순 사건으로 불거진 성폭력 범죄자 처벌 강화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곽대경 교수(이하 곽대경) = 이번 사건으로 판사들도 뜨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형기준에 따른 법원의 선고와 국민이 실제 기대하고 있는 아동성폭행 처벌 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킨 사건이었다.
법관들이 내린 결정이 국민의 생각과 맞지 않는 옷임이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사법부도 깨달아야 한다. 국민 법감정과 사법부 판결의 차이가 너무 달랐던 부분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양형을 높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양형이 필요하다.

이임혜경 소장(이하 이임혜경) = 복잡한 심경이다. 상담자 입장에서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처벌 얘기만 나오는 게 안타깝다.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은 맞지만 “사형시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은 당혹스럽다.
정부와 정치권 등은 국민 여론만 읽어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인기 편승적 방안일 뿐이다. 가해자가 어떻게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는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마련이 먼저 얘기돼야 한다고 본다. 양형을 높이자는 의견은 사안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곽대경 = 법이라는 것은 추인(追認)하는 것이다. 사회를 뒤따라가며 바뀌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함과 동시에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 법감정도 이에 따라 바뀌게 되는 점을 사법부가 인식해야 한다.

특히 아동 성폭력범처럼 전 국민을 경악시킨 사건 같은 경우 기본 6~9년, 가중 시 7~11년이라는 현행 양형기준이 있다. 정부에서는 이번에 현행 양형 기준을 기본 7~11년으로 상향 조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조씨 사건의 경우 법원이 최고형을 선고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아동 성폭력 사건의 판례들을 분석해보면 처벌 자체가 그렇게 무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법원 스스로 양형에 의문을 제기하고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이임혜경 = 지금 있는 양형제도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엄격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제도는 이미 갖춰져 있다. 조씨의 경우 법원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점을 감형 요소로 채택해 감형해줬다.
술이라는 것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경향이 문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경향을 분석해 양형을 했더라면 결과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선고가 나왔을 것이다.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 없이 자꾸 눈에 보이는 형벌만 강화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감경 사유에 술에 취한 상태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양형위원회에서도 논의가 됐지만 결국 이번에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 법원이 양형 기준을 기계적으로만 적용한 것이다.

곽대경 = 범죄 예방 효과는 크게 특별 범죄 예방 효과와 일반 범죄 예방 효과 등 두 가지가 있다. 특별 범죄 예방 효과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교정기관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재범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 범죄 예방 효과는 가해자의 처벌을 보고 ‘저런 일을 저지르면 저렇게 처벌받는구나’라는 것을 일반인들에게 알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엄한 처벌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 사회가 이런 범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임혜경 = 성범죄 신고율은 10%밖에 안 된다. 기소율은 더 낮다. 나머지 90%는 고소도 안 되는 상황이다.
가해자 교육 등을 통해 봐도 기본적으로 그들은 잡힐 것을 가정하고 저지르지 않는다. 형량을 세게 한다고 얼마나 범죄가 예방될지는 모를 일이다.
아동 성폭력의 경우 주변의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성폭력을 폭력으로 해석하지 않고 ‘인간관계’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귀여워서” “아는 애니까”라는 성인들의 시각이 아동 성폭력을 묵인하고 있다. 그게 더 큰 문제다. 사회 전반적인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곽대경 = 대증요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대안들도 고려해 봐야 한다. 국민의 분노에 대해 임기응변적 정책들이 나올 가능성은 많지만 냉정하게 대안들을 검토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화학적 거세’의 경우 범죄 예방 차원의 방안으로서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는 연구가 부족한 듯싶다. 우리 사회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부작용은 어떤 것이 발생할 수 있는지 잘 연구해 추진해야 한다. 전자발찌의 효용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재범도 거의 없다.

이임혜경 = 그런 대안들을 국민적 감정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내놓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미 가해자 신상공개나 전자발찌 제도 모두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점점 더 센 정책을 내놓는 것에 경쟁이 붙은 것처럼 느껴진다.

성폭력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책이나 제도 등 여러 가지를 새로 고민해 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독일의 경우처럼 검사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번 조씨 사건의 경우 검사가 항소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항소할 길이 없었다. 피해자들이 대개 어린 아이일 때에는 신고하지 못했다가 성인이 돼서야 신고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감안해 공소시효를 일정 기간 정지시키는 방안도 필요하다.


곽대경 = 국민 법감정은 더 엄한 결정을 원하고 있다. 10년, 20년 형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거기에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지도 문제다. 가둬만 놓을 경우 더 무서운 괴물이 돼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다.
기간 연장도 중요하겠지만 가해자들의 개별 상황에 맞게 범죄를 반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분석해 실질적으로 그에게 필요한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 그가 갖고 있는 왜곡된 성관념을 바꿔줄 수 있는 수감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또 출소 뒤 체계적인 재범 방지 관리도 지금보다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이임혜경 = 이 사건을 처음 공개한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에서 문제제기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후 자꾸 가해자에게만 포커스를 맞춰 사건이 한 번 들끓다가 끝날 수밖에 없게 했다. 강경대책들만 내놓게 되고 그 사건의 원인이나 사회 변화의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동 성폭행이 계속 일어나는 원인이 뭘까’라는 질문은 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현재 사회 문화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언론이 그런 부분은 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곽대경 = 성폭력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연구가 부족한 점은 인정한다. 성폭력범죄가 왜 끊임없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범죄자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특성과 환경에 대해 기초적인 조사도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도 절박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정신적인 지원이나 상담시스템도 절실하다. 가족들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치료와 지원 서비스가 요구된다.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에 이번만은 잠깐 관심을 쏟다가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임혜경 = 정부 차원의 법률·의료지원은 이미 갖춰져 있다. 성폭력상담소도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양보다는 질을 따져봐야 한다. 사회 속에서 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는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인식 없이 쏟아내는 대안은 ‘모래 위에 성쌓기’에 불과하다. 피해자 지원 내용에 대한 점검과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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