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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 65돌이 되는 날이다. 2010년의 북한은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지난 4년여 동안 바깥나들이가 없었던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 악화설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5월과 8월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하였다. 8월 방중 때에는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을 초청해 놓고 정작 본인은 중국 방문 길에 나서는 계산된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 년에 한 번 열던 최고인민회의도 4월과 6월 두 차례 개최되었다. 그리고 지난 9월에는 44년 만에 당대표자회의를 열었다.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 이렇게 2010년 한 해내내 북한 내부는 매우 긴박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북한이 일관되게 두 가지 현실적 과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가 북한 체제의 안정화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만성적 경제난 등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선군정치 하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던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래 이 일이 본업이었던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다.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의 후계자 지위를 공식화하는 것을 포함하여 북한 노동당의 지도부를 전면 쇄신, 재정비한 것이 그것이다. 선군정치 10여년에 피폐해진 민심을 결집해 나가기 위해서는 당이 전면에 나서서 본래의 역할을 다하는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김정일 통치의 근간인 선군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당을 통해 선군정치를 구현하는 과도기간이 설정된 것이다.
김정은이 당과 기존의 선군정치의 양 측면에서 모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은 것도 이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앞으로 후계자로서의 권한과 역할을 계속 늘려 나갈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둘째는 북미관계 정상화로 압축되는 체제 생존에 적합한 대외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일의 당 총비서 추대를 비롯하여 당규약 개정과 당중앙 지도기관 선출이 의제였다고 발표한 것으로 미루어 당대표자회의 기능 중의 하나인 당의 노선과 정책과 전략에 대해서는 토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 규약의 개정을 통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당의 최종목표에서 삭제함으로써 일부 국제사회의 조류와 그동안 남측의 요구를 수용한 흔적을 남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김정일 위원장의 두 차례 중국방문을 통해 북한의 입장이나 향후 노선이 중국에 전달되었고 중국을 통해 미국에도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에도 직간접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대남 대화공세를 적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 초 대승호 억류선원 석방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실무접촉, 남북군사실무회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 등을 북한이 먼저 제의하였다.
북한이 이 시점에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북미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를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진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사실 미국 정부도 그동안 북미대화를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진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최근 미 국무부는 천안함 국면이 지루하게 지속되면서 핵문제 해결이 미궁에 빠지고 있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클린턴장관의 지시로 대북정책에 대한 '신선한 대안(fresh options)'들을 점검해 왔다. 여기에는 과거에 검토되지 않은 다른 대안들도 토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의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김정일 위원장은 창춘에서 열린 후진타오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6자회담의 조속 재개를 희망”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북한이 북미대화 재개를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지난 달 서울을 방문한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외교부 고위관리와 면담을 끝낸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멀지 않은 시점에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더욱이 북한에서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체제를 정비하고 후계자를 공식화하는 등 새로운 체제의 출범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새로운 지도체제와의 대화 필요성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은 새롭게 면모를 갖춘 북한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북한이 중국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그냥 나 몰라라 내버려 두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 창건 65돌을 맞아 그동안 물밑에 진행해 왔던 후계체제를 공식화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는 북한 내부의 일로 간주되고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스스로 김정일 이후에 대비하고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제사회를 향해 체제 안정성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현재의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한데 묶는 3대연합을 유일한 대안으로 합리화하려 할 것이다. 당 창건 65돌 행사를 계기로 이를 노골화하고 있다.
북한은 2010년을 전환의 시점으로 기록하려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1998년 국방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선군정치의 목표였던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자신의 주도하에 마무리 짓고자 할 것이다.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정면 돌파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북대화로 여건을 조성하면서 북미대화를 적극 추진 할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핵능력 강화를 통해서라도 대화의 여건을 조성할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협력이 용이한 후진타오 주석의 재임 기간 에 이를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다. 김정은으로의 후계체제도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이다. 북한과 국제정세의 흐름을 치밀하게 읽고 큰 틀에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신선한 대안’은 정작 우리가 모색해 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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