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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이 2년째를 맞고 있다. 성남시는 2016년에 분기당 12만5000원의 청년배당을 만 24세 청년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분기당 25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배당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청년배당을 지급받으려면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그 이외에 다른 조건은 없다. 그래서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 1만1000명 정도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다. 1년에 들어가는 예산은 100억원 정도이다. 이 청년배당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왔다. 왜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느냐’는 반론도 많았다. 그리고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1년에 100만원으로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6년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청년배당을 지급받는 성남시 청년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청년배당이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40.3%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고, 55.0%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청년들 중 95.3%가 1년에 50만원, 100만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는 돈이 부족한 것이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 청년의 얘기였다. 그 청년의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돈이 없어서 취업을 하려 함 → 취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스펙이 필요 → 스펙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함 → 공부할 돈이 없음 →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함 → 돈은 버는 데 공부할 시간을 빼앗김. 악순환.”

이 얘기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미래를 준비하려 해도 돈이 필요한데, 기성세대는 돈을 지급하기보다는 ‘요즘 청년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꼰대질을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청년들 중에는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얘기를 한 청년도 있었다. ‘젊을 때에는 고생해야 한다’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데 배부른 소리한다’는 시선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세대야말로 ‘경제적 시민권’을 박탈당한 세대이다. 말로만 시민일 뿐,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나 기회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저임금·불안정 노동밖에 없는 청년들이 많다. 이런 청년들에게 ‘열정’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자립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자립하라’는 강요를 하는 것도 모순이다.

진정한 자립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하다. 청년들이 일찍 자립하는 나라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나라이다. 청년들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과 혜택들이 잘 갖춰진 나라일수록 청년들의 자립이 쉽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아스팔트 깔고 쓸데없는 건물 짓는 데 들어가는 돈만 줄여도, 그리고 새고 있는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청년들에게 몇 년간이라도 청년배당을 지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청년이 되었을 때에 일정 기간 동안 청년배당을 받을 수 있다면, 청소년들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덜 불안하고, 좀 더 여유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들은 배려와 존중을 받은 느낌이라고 한다. 말로만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으로 대우를 받은 느낌인 것이다. 그래야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정치적 시민권’도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당수 청년들은 참정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 19세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고, 지방의원이라도 출마하려면 만 25세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만 25세가 넘어서 피선거권을 획득하더라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청년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도 없다. 비례대표가 ‘장식품’에 불과한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 때문이다. 청년들이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 당선가능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2030세대가 1%, 지방의회에서도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래서 청년배당과 함께,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논의의 판은 열렸다. 지난 15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잠정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청년들의 참정권 확대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높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다양한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청년배당과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더 나이 많은 세대들도 함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실현되더라도, 팍팍하게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삶에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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