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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18기념식에서 열사 4명의 이름을 불렀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서 목숨을 던졌던 이들이다.

다가오는 6월10일에도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해 목숨을 잃었던 박종철, 6월9일 최루탄에 쓰러져 목숨을 잃은 이한열. 그리고 6월18일 부산 범천동 고가도로에서 시위 중에 최루탄을 맞고 추락해 숨진 ‘이태춘’이라는 이름도 기억해야 한다. 그해 여름 거리에 섰던 수많은 시민들도 잊을 수 없다. 그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6월항쟁 당시 30만명이 참여하는 부산시위를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이었다.

30년 전 최루탄 속에서 발표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결의문은 “동장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국민들의 손으로 뽑게 될 수 있을 때에도 소중한 국민주권을 신성하게 행사할 것임을 온 국민의 이름으로 결의한다”로 끝맺고 있다.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그렇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으면 민주주의가 진전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군사정권의 일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되었고, 10년의 민주정부 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거쳤다. 그러나 1987년의 결의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우리가 국가의 주권자’임을 보여주었고,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개혁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바꿨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국회는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만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 듯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순직한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부터 시작해서 대통령 권한으로 우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53억원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노력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결국 법률을 바꾸고 예산을 통과시키려면 국회를 거쳐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조세·예산개혁을 하려고 해도 국회를 거쳐야 한다.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려고 해도, 국회가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좋은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과 연결된 문제인 선거제도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가 이런 일들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 국회는 온갖 적폐의 온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수활동비’도 1차적으로 개혁해야 할 곳은 국회다. 국회 스스로가 연간 81억원이 넘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다보니 행정부의 특수활동비 사용을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회 특수활동비는 의장단, 원내대표단, 상임위원장단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어디에 쓰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여당 원내대표 시절에 특수활동비를 받아 생활비로 썼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특수활동비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는 업무추진비, 예비금, 의장단 및 정보위원회 해외출장비의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아서 지난 4월30일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국회의원 1인당 연간 4500만원까지 쓸 수 있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출증빙서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일에 집중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관리에 매달리고 있다. 지방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분간이 안된다. 그런 와중에 특권만 챙긴다. 연봉이 1억4700만원이 넘고, 개인보좌진 숫자도 독일 국회의원의 2배 수준이다. 정당은 ‘세금 먹는 하마’일 뿐 제 역할을 못한다. 정책기능이 부실해서 선거 때마다 캠프 중심으로 정책이 급조된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일인 ‘공천’도 엉망이다. 지금대로면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반민주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최소한 당원들이 후보자를 선출해야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독일처럼 당원들이 뽑지 않은 후보는 후보등록을 거부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개혁도 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개혁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2월과 2016년 8월, 두 차례에 걸쳐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만 18세 선거권 연령, 유권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 개선 등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 이런 제도개혁 논의를 하려면 국회 내에 정치개혁특위부터 구성해야 하지만, 국회는 이런 일을 미루고 있다.

그래서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적폐 덩어리인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은 불가능하다. 그 어떤 개혁도 좌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범국민적인 ‘정치판갈이’ 운동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개혁, 국회개혁, 정당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1987년에 이루지 못했던 개혁이지만, 이제는 해야 한다.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지 못하면, 나라다운 나라는 불가능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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