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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직후 홀연히 떠났던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잠시 귀국했다. ‘양비’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양 전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 당 대표를 거치며 짧은 시간 상층 단위에서 정치를 학습했다. 때마침 금권, 패권 정치가 저물 무렵이었다.

‘양비’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무게를 만들었다. 2008년 3월 ‘시민 문재인’은 경남 양산 매곡마을로 내려와 “밥벌이가 아니라면 더 깊숙한 골짜기를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랬던 ‘시민 문재인’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낸 것은 정권교체를 도원결의한 친노 그룹의 집단적 결의였다. 그다음 기승전결은 ‘양비’가 엮었다. 한 손엔 ‘노무현의 유산’을 또 한 손엔 <문재인의 운명>을 건네며. 2012년 대선 시작부터 2017년 대선 마무리까지 ‘양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간중간 심호흡이 필요할 때 <1219 끝이 시작이다>와 같은 고해성사를 부추기는 일도 ‘양비’의 몫이었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의 저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양정철 전 비서관은 참모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이 분류한 참모 10계명 중 실제 ‘양비’ 사례를 대입하면 역사적 책무에 충실할 것(정권교체), 전투보다 전쟁을 생각할 것(문 대통령 20대 총선 불출마), 특출한 다른 참모를 인정할 것(임종석), 자리에 연연하지 말 것(외국행) 등이다.

‘양비’의 참모 정치는 귀국길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참모의 철학을 대통령 리더십에 투영하지 않고 직접 제시했다. ‘말과 글’이었다. 따지고 보면 말과 글은 ‘양비’의 DNA다. ‘양비’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국내언론·홍보기획 비서관을 맡아 권력의 언어를 다뤘다. 이전엔 기업에서 자본의 언어가 가진 힘을 알렸다. 학창 시절엔 격문으로, 학보사 기사로 운동의 언어를 구사했다. ‘양비’는 통화와 출판기념회에서 “이젠 말의 힘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진보시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저서도 <세상을 바꾸는 언어>다. 7~8년 전부터 메모한 약 300단어를 추려 평등, 배려, 공존, 독립, 존중의 언어로 정리했다. 특히 권력의 언어에 집중했다.

그간 정치에서 말과 글이란 정치인들의 권력 분배를 위한 자원에 불과했다. 종북, 빨갱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정치권의 거친 언어도 권력의 주인이 시민이 아니라는 확증편향에서 비롯된다.

요즘 툭하면 저급한 언어를 쏟아내는 자유한국당과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비되는 결정적 이유다. ‘양비’는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 정권이다. 우리가 만든 정부니 성공해야 한다는 주권의식이 강한 시민들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고 규정했다. 정치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수준의 시민들과 함께하는지 고민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비’의 화두는 뼈아픈 시행착오 속에서 더 깊게 길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해 제도개혁을 중요하게 여겼던 리더였다. 하지만 급했다. ‘우리가 옳다’는 전제 속에서 시민들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사건건 관성과 개혁의 경계를 돌파해야 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당시 권력의 언어는 통역이 필요하다는 푸념이 나돌곤 했다. 언론담당 ‘양비’는 그때마다 최전선에 있었다. 국회 국정감사 때 수석도 아닌 ‘양비’가 출석했을 정도니. 노 전 대통령과 언어로 맺어진 참모 중에서도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했던 독특한 참모였다. 뾰족하고, 투쟁적이고, 거칠고, 비타협적인 ‘양비’ 이미지는 이때부터 굳어졌다.

정권교체 일등공신이면서도 외국을 떠도는 데는 정치적 이유가 클 것이다. 권력 내 이해관계, 문재인 정부의 차별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등등. 일본에서 ‘양비’가 언어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책을 낸다고 해서 “이번에 귀국하면 다른 문법으로 만나고 싶다”고 미리 요청했다. 요 며칠, 다른 문법으로 접한 ‘양비’는 달라져 있었다. 말과 글로 아파 봤던 참모가 말과 글로 치유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사람이란 존재가 아무리 상처이면서 칼이라고 해도. 스스로 문재인 정부에서 ‘양비’ 이외 다른 직책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다른 문법으로 답한다면 ‘양비’의 정치 재개는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시점이 아닌 ‘언어 민주주의’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때까진 “나는 지나가는 봄”이라고 한 그의 계절엔 바람이 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9개월 전 무심한 혼잣말에도 꽃은 흔들렸다. 심지어 지금은 찬 바람에 내준 한겨울 나뭇가지마다 다른 꽃들로 무성하다.

‘양비’라고 마음이 스산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엇으로든 피어난다. 어떻게 피어날 준비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쩌겠나. 살아온 길이 그랬고, 살고 있는 지금이 그렇고, 살아야 할 내일이 심상치 않은 운명인 것을.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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