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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12일 당정협의를 열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을 내놨다.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피해액의 최대 10배까지 배상받게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 때 비밀유지협약서 체결을 의무화하는 게 핵심이다. 또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소송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입증책임’을 가해혐의 기업에도 묻기로 했다. 대기업의 기술탈취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피해 중소기업은 보복이 두려워 고발을 꺼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늦었지만 바람직한 조치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모든 기술보호 관련 법률에 도입하고, 배상액도 손해액의 최대 10배로 강화했다는 점이다. 손해배상에 관한 현행 규정은 하도급법에선 3배 이내, 상생협력법·특허법·부정경쟁방지법은 손해액을 배상하도록 하고 있지만 산업기술보호법에는 손해배상 규정조차 없다. 기업 간 기술자료 요구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 때 비밀유지협약서를 체결하도록 한 것은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소송이 제기됐을 때 가해 혐의를 받는 대기업에 기술탈취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을 지운 것도 평가할 만하다. 지금까지는 기술탈취 피해 기업만 입증책임을 떠맡는 바람에 소송이 장기화할 경우 비용이 늘어나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어느새 흔한 일이 되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중소기업이 기술을 탈취당한 사례는 644건에 달하고, 건당 피해액수만도 17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공정거래위원회나 경찰에 신고한 중소기업은 3.8%에 그쳤다. 기술탈취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거래를 끊겠다는 대기업의 갑질에 시달릴 뿐 아니라 소송을 제기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정당한 대가 없이 빼앗는 것은 경제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다. 이번 대책이 대기업의 횡포를 차단할 계기가 될지는 정부의 신속하고도 엄정한 법 집행과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잠식하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대기업도 해외 기술은 비싼 로열티를 주고 사오면서 국내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은 빼앗는 이중적 행태를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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