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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달라졌다. 이해찬 대표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 말이다. 이 대표는 종부세, 공공기관 이전 등 ‘표’ 계산을 해야 할 사안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부동산, 전교조 합법화, 최저임금 등 청와대와 정부가 엇박자를 내거나 주저하는 정책에도 거침이 없다. 집권여당도 안정궤도를 순항 중이다.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때만 해도 민주당은 내분이 불가피해 보였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조기 등판했고, 지지층 내부는 상대 당 후보를 찍자고 할 정도로 대립했다. 이 대표는 강한 여당과 20년 집권론을 앞세워 군기반장을 자임했다.

이 대표는 초선 시절부터 독불장군, 면도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까칠하다. 교차로에서 불법유턴한 자신의 차에 ‘의원님’이 탔다며 딱지를 끊지 않은 의경을 경찰서에 넘겼다. 국회 상임위에서 비밀리에 설계됐던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파헤쳐 아버지 친구인 심대평 충남지사의 사퇴를 끌어냈다. 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반항했던 사건이다. 13대 국회의원 시절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사당화를 겨누며 탈당을 감행했다. 되돌아오긴 했지만 김 전 대통령 눈 밖에 나 비주류로 밀려났다. 조직가 기질, 즉 대중성이 있어야 리더에 오를 수 있는 한국 정치풍토에선 한마디로 출세할 수 없는 성격이다. 실제 이 대표는 ‘기획’ 이상의 일을 도모했을 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 책임 총리까지 올랐다. ‘쿨하게 출세하기’(인물과사상사, 박창식 저)를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가 11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집권여당 대표다. ‘쿨해선 출세할 수 없는’ 자리란 걸 알았기 때문일까. 이 대표가 부드러워졌다는 호평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실이라면, 본질까지 달라진 거라면 그의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다. 이 대표는 왜 전당대회에 출마했을까, 어떻게 당선됐을까를 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지인들을 만나 “내가 대표를 안 했을 때 당이 잘못되면 그 책임은 어떡할 건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측근은 “민주정부가 두번 집권하고도 박정희 패러다임에 편승한 기득권 구조는 여전했다. 이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권 재창출도 소용없다. 독재정권 때보다 더 큰 소명의식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전당대회 키워드는 ‘민주당’이었다. 당을 위한 선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원과 지지층은 이해찬이라고 화답했다. ‘강한 여당’, ‘20년 집권론’의 실체이다. 이 대표는 후배들에게 “노선을 버리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해 정치할 것인지 잊지 말라는 충고일 테다. 이 대표도 비껴갈 수 없는 명제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해진다.

문재인 정부 국정 2기가 경제 문제로 휘청이고 있다. 당·정·청 엇박자는 차치하고라도 경제체질을 바꾸겠다는 건지, 경제지표만 끌어올린 뒤 물러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온갖 성장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성장의 열매는 늘 기득권 차지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의 절규는 자영업 과실을 정작 자영업자들이 차지하지 못하는 분배 구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처럼 분배가 핵심인데도 여전히 성장의 주술에 갇혀 있다.

규제완화, 은산분리가 여권발로 나온다. 이 대표는 심지어 부동산 해법으로 신자유주의 개발경제의 상징인 ‘그린벨트 해제’까지 거론했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도입을 공론화한 뒤 시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후퇴를 거듭하다 집값 폭등의 빌미만 제공했다. 속된 말로 ‘골목에서 껌 한번 씹고 뱉었을 뿐인데 건달 취급’만 받았다. 차라리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골목을 휘어잡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정·청마저 시장 영합주의 정책에 화음을 넣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경제기득권, 시장권력과 치열한 가치논쟁을 벌여야 할 때 아닌가. 당원과 지지층의 언어로 풀어쓴다면 “제발 휘둘리지 말고 응원할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뜻이다. 숱한 가능성 중 정권의 철학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책의 본질이다. 경제는 외교와 달리 제로섬 게임 특징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 가장 선명해야 할 분야라는 의미다.  

곧 이 대표 취임 한 달을 맞는다. 대통령제, 그것도 정권 초반에 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드문’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 복잡한 정치공학을 떠나 ‘정치인 이해찬=독립변수’라는 명제가 깨지지 않는다면. 기왕 나선 길이라면 원칙을 틀어쥐되, 까칠한 성격이 부담이라면 ‘미소짓는 호랑이’ 정도로만 변하시라. 원칙을 훼손하는 모든 반대자들에게 ‘그건 아니지요’라며 웃어 보이되,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유난히 강조하는 ‘최고의 협치’도 다시 생각해달라.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구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협치여야 한다. 지분이 필요하다면 보수야당이 이를 위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챙겨주는 게 ‘최고의 협치’ 아닐까. 그저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지분을 주고받고, 여당 대표가 몸을 낮추는 게 협치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달라.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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