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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 전망 보고서는 2050년의 경제성장률이 0.5%에 그치고 사실상 ‘제로성장’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같은 변화가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생산연령 인구 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하락하면서 2041년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0.7%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로성장이라는 미래에 많은 사람들, 특히 경제 전문지들은 큰 우려를 표한다.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일자리이고 소득이고 선진국의 지표이며 자존감이기 때문이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많은 강대국들이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국은 아직 예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2050년은 한국이 탄소중립(넷제로)에 도달하기로 약속한 시점이기도 하다. 현 정부의 태도와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 약속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2020년부터 매년 5~10%씩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야 가능한 목표인데, 지난해에 배출은 다시 3.5% 늘어났다. 그러나 기후악당 국가를 면치 못하는 감축 실적에 경악하는 언론도 보기 어렵고 국정감사에서 호통치는 의원도 없다. 제로성장은 공포스럽지만 넷제로 실패로 인한 기후 붕괴와 재난의 일상화는 걱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다시 들여다보자. 투입된 주요 변수 중 하나인 GDP 성장률은 마침 KDI의 추정치에 근거하는데, 2050년 예상 성장률이 0.9%이니 이번 보고서의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 수요량은 2018년 대비 겨우 5% 감소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최종 확정된 두 시나리오는 그래도 남는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8000만~1억t가량을 산림흡수원,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저장(CCUS), 직접공기포집(DAC) 같은 마이너스 배출 기술로 해결한다고 제시되었다. 

기후 활동가들은 화석연료 이용 자체를 중단하는 ‘배출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 배출을 전제하는 ‘넷제로’는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 수립에 참여한 정부 측 인사나 산업계 전문가들 중에서도 이런 기술들이 2050년 적용 가능하거나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한국의 배출 실적을 돌아보면 정부의 정책이나 기술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의 상태가 압도적으로 작용했음이 확연하다.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이 -6.9%를 기록했던 1998년에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4% 줄었다. 코로나19 초기 상황 속에 경제성장률이 1% 하락한 2020년에 배출량도 1% 감소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생산과 소비 속에 배출량도 반등하고 있다. 너무도 확실하고 불편한 진실이다. 

2050년까지 인구와 산업부문 생산과 에너지 수요가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가정과 GDP는 그래도 계속 증가해야 한다는 믿음이 오히려 현실을 배반하는 것은 아닐까? 안일한 ‘뉴노멀’을 예상하기보다는 정상성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기후 비상사태를 직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제로성장이라는 전망은 오히려 배출제로를 위해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 조건이 아닐까?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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