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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치소 수감 중에 브로커를 통해 특별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그런가 하면, 수감 중인 재벌 등 부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나와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이 일고 있다. 얼마 전에는 무고한 사돈 여대생을 청부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흉악 범죄자가 교도소가 아닌 초호화 병실에서 지낸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그가 모 제분회사 회장 부인이라는 돈과 위세를 이용해 형벌체계를 조종하고 왜곡한 결과다. ‘전관예우’로 상징되는 법조 부조리의 핵심은 교도소에 수감되는 ‘실형’을 면하게 하거나, 구치소에 구금되는 ‘구속’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탁이다.


역대 전관예우 논란 고위 공직 후보자 _경향DB



반면, 지난 6월17일 천안교도소에서는 한 남자 재소자가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0년부터 5년간 교도소와 구치소 등 수감시설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모두 388명이고 이 중 34명이 숨졌다. 더 심각한 것은 처벌을 받은 범죄자의 ‘재범률’이다. 범죄자의 ‘재수감률’은 22%에 달하고, 성폭력범죄 재범률 14%, 살인범죄 재범률 10%, 소년범 재범률은 30%에 이른다. 유영철, 정남규 등 연쇄살인범이나 ‘묻지마’ 살인범 등 강력범죄자 대부분 출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전과자들이다.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법전 속 글자로만 존재하고 집행되지 않은 지 20년째다. 종합하면, 교도소로 대표되는 ‘국가 형벌권’이 전혀 ‘교정교화를 통한 범죄예방’이라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반면, 빈부격차와 권력의 전횡이라는 사회 부조리를 악화시키고, 범죄자들의 반사회성과 분노만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철학이 없는 국가 형벌 정책’이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혹은 중동 국가들처럼 고전적 엄벌주의를 채택하려면 지위고하 빈부에 관계없이 범죄를 저지른 누구에게나 균등한 엄벌과 중형을 내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수감시설을 건설해 운영해야 한다. 반대로, 북유럽에서 시행하는 사회 내 처우, 대안적 형벌 중심의 인본주의적 형벌제도를 채택하려면 국민의 합의를 구하는 용기 있는 설득작업을 전개한 후 수감대상 범죄의 종류와 대상을 대폭 줄이는 획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뉴질랜드나 캐나다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피해자 중심의 평화적 형벌제도인 ‘회복적 사법’을 폭넓게 수용하려면 과감한 실험과 사회적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형벌 철학’은 무엇인가? 현 정부의 ‘형벌 정책’은 무엇인가? 역대 정권마다 유권자의 표심과 대중의 지지율에 관련된 정책 논의·연구와 개선과 실행은 숱하게 시도됐지만, ‘형벌’ 철학과 정책에 대한 언급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형벌 철학과 정책에 대한 국가와 정권 차원의 무관심은 법기술자들과 정책결정 관료들의 ‘재량’과 ‘고유권한’의 확대로 이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기술관료 자신들의 안위와 입신과 관계없는 문제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 무책임 현상이 확산된다.

결과적으로 범죄자나 피해자의 지위나 권한, 혹은 재판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따라 형량이 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없는 범죄자들을 포함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수용해 ‘과밀’ 현상을 초래하고, 그로 인해 범죄자들의 반성이나 참회를 이끌어내고 범죄의 습벽을 개선하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억울함과 반발감,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리만 증폭시키게 된다. 범죄는 더 흉포해지고, 민심은 흉흉해지며 불신풍조가 만연하게 된다.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일선 교정공무원의 업무강도와 피로, 스트레스 및 고뇌는 심해지기만 할 뿐이다.

국가 형벌 철학과 정책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 없이 혼란에 빠지고 피로에 지친 교정공무원과 분노와 불만에 찬 재소자 사이에 충돌과 시비가 늘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죄와 벌’만큼은 공정·공평하며 실효성 있게 관리돼야 한다. 대한민국, 형벌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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