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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페미니스트’가 이틀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터키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군(18세)이 “이 시대는 남성이 성차별을 받는 시대다. 나는 페미니스트를 증오한다. 그래서 ISIS(이슬람국가의 전신)를 좋아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자 누리꾼들이 페미니스트가 무슨 뜻인지 찾아본 것 같다.

한국은 남성이 성차별을 받고 이슬람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것이 그가 진정 한국을 떠난 이유일까. 나는 그의 ‘탈출’이 성차별에 대한 고민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20대 남성의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청년실업과 연동된 ‘5포 현상(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 마련 포기)’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사실 그가 말하는 “남성이 당한다”는 성차별은 여성이 빼앗은 ‘파이’ 때문이 아니라 남성들 간의 계급 갈등의 결과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소위 ‘알파 걸’로 불리는 여성의 가시화 현상 역시 계층 문제다. 모든 여성이 알파 걸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여성의 노동과 역할의 증대를 ‘여성 상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쨌든 위와 같은 상황은 한국사회에 팽배한 이분(二分) 논리를 상징하는 것 같다. 무관한 이슈들이 맥락 없이 아무렇게나 연결되는 것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 시위대에 “그렇게 남한이 싫으면 북한 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사과를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그럼, 배를 재배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냐?”는 식의 대화다.

이의 국제정치 버전이 글로벌 미디어에서 ‘여성’과 ‘이슬람’이 묘사되는 방식이다. 여성이나 이슬람은 큰 인구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내부에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여성은 불쌍한 피해자 아니면 ‘된장녀’ 둘 중 하나이고, 이슬람사회는 미개하고 비상식적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이슬람 = 여성 억압”이라는 ‘진실’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문명과 거리가 멀다. 이슬람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 57개국에서 12억명 이상이 믿는 종교다. 이슬람, 이슬람국가, 이슬람사회는 모두 다른 뜻이다. 대개는 이슬람 = 아랍, 중동으로 알고 있지만 세계 최대의 이슬람 지역은 인구 4위의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다. 이들 지역의 주민 90%가 무슬림이다. 이슬람교의 알라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 동일 인물이다. 같은 신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차도르, 히잡, 부르카, 니캅 등 이슬람 여성의 복장에 대한 논쟁도 간단하지 않다. 여성의 몸을 보호한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문화가 서구의 다이어트나 성형 시술보다 더/덜 차별적이라는 논의까지 이슬람 여성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남성이 성차별당하고 있다는 불만은 역사적으로 김군이 처음도 혼자도 아니다. 1989년 12월6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공과대학에서 한 남성이 “왜 여자가 공학을 공부하느냐”며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던 14명의 여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남성이 주도하는 남성폭력 근절 운동인 ‘하얀 리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북미의 경우 배우자 폭행의 90%, 성폭력의 98%가 남성에 의해 발생한다. 한국의 가정폭력이나 여아 낙태도 외부에서 보면 ‘이슬람사회만큼이나’ 끔찍하게 보일 것이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빈발하는 가부장제 현상이다.

요지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합의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여성 노동자들은 대다수 비정규직에 남성 임금의 60%를 받고 있으며, 노동 시장 진출의 질은 세계 100위권 밖이다. 그러나 한국 여성의 학력 수준은 세계 1~2위권이다. 미국 50개 주(州) 중 여성의 교육, 경제적 지위가 가장 낮은 주와 가장 높은 주의 가정폭력 발생 비율은 똑같다. 여성은 공적 영역의 지위와 사적 영역의 지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군 사건은 여성과 이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국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은폐시키고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를 작동시키는 요소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서 국경을 넘어 터키로 도망쳐 나온 여성이 터키 국경마을 수루치의 난민촌에서 아이를 안고 서 있다. _ AP연합


여성과 이슬람을 균질적 집단으로 단일화, 대상화시켜 자신을 인류의 보호자로 자처하는 서구 강대국의 국제정치 전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대표적이다. 당시 명분은 탈레반으로부터 여성을 구한다는 것이었고 미국의 우익 여성운동은 전쟁을 지지했다. 김군은 이러한 국제정치 현실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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