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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회항 사건에서 계속 생각나는 것은 승무원들의 스트레스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14시간가량, 그들의 몸과 마음은 어떤 지경이었을까. 이후 기내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큰 사고 없이 업무를 수행했으니 다행이다. 극심한 감정노동 수행 중에 ‘라면 상무’ 같은 승객이 탑승했다면? 만일 조현아씨로 인한 승무원의 스트레스 때문에 사고가 났다면, 안전사고인가. 승무원과 승객, 국민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났다면 명칭은 ‘조현아씨 사고’다.
나는 세월호 역시 안전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인식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한다. 재난, 재해가 모두 안전사고는 아니다. 발단에 따라 다르다. 세월호가 안전사고라는 인식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통념이 전 국민을 혼내고 있다. 세월호를 안전사고로 본 관료들이 처음 제시한 정책(?)은 “수학여행 전면 금지”였다. 그리고 결론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데다 관료 수는 많고 재난 구조 인력은 적은 옥상옥 조직, 국민안전처의 출범이었다.
안전 강조 담론은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처럼 사회 구성원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면 누가 불감증인가. 학생 승객들이? 세월호 승무원이? 해경이? 세월호 선주라는 故(???) 유병언씨가? 아니면 구원파가 무서운 사람들이? 이처럼 안전 불감증 담론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똑같이 잘못했다고 본다. 우리가 “내 탓이오”를 강요당할 때 정권은 가해 구조에서 모습을 감춘다.
세월호가 진짜 안전사고였다면 국가와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랬던가? 대통령은 유가족 앞에서 불쾌한 듯 몸이 굳어 외국 언론의 분석 대상이 되었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 ‘여론 지도층’은 유가족에게 상식 위에 군림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을 보호했나? 유가족은 위로받기는커녕 “불순한 유가족”을 외치는 일부 정치인과 시민들로 인해 끊임없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다.
안전 문제에는 시비가 있는 법이다. 특히 세월호 사건은 누구나 알다시피 잘못한 사람, 무고한 피해자가 명백하다. 안전 의식은 평소에 필요한 것일 뿐, 세월호와 무관하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안전 불감증을 반성하는 태도는 성찰이 아니라 문제를 왜곡하는 부정의다.
세월호 진실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사고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서 사고가 안 난다면 오히려 이상한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나는 세월호를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구조적인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낡은 선박, 훈련되지 않은 승무원, 과적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위와 같은 상황은 이미 관련자들의 ‘선택’이었다. 무의식적 의도다. 왜?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불성실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조현아 기시감.’ 주변을 보면 어느 조직이나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갔을까” 싶은 이들이 있다. 드라마 <미생>의 마부장 같은 사람이다. 무능에 불성실, 탐욕, 인간성 종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 여성주의자 중에도 상당히 많다. 좌우, 계급, 성별을 막론한, 시대를 표상하는 인간성의 출현이다.
이들은 중심과 최고에 대한 열망, 약자 멸시, 출세 만능 이데올로기, 유명인사 증후군에 사로잡혀 있다. 조현아씨 같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그와 마인드를 공유하고 있다. 당연히 업무는 대강이고 일은 ‘관계’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조씨처럼 강자(이 사건의 경우, 여론)의 움직임에 따라 태도가 표변하고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움직이면 사고를 치는 걸어다니는 재앙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매스컴에 노출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 재벌가가 홍보에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유다.
대형 참사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요지는 당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특정한 타입의 인성(캐릭터)이 형성되었고,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들이 ‘잘나가면’, 사람들은 비난하면서도 그들을 선망하게 된다. 이들이 뿜어내는 나쁜 기운과 라이프스타일은 주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체를 집단 우울증 상태로 만든다. 뻔뻔한 이들 중 일부는 세월호 참화를 만들었고, 일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대응을 보여주었고, 일부는 지방선거에서 이들을 당선시켰다. 조현아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세월호 대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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