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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미국 언론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초강대국 정치(superpower politics)’로 불렀다. 미국은 중국에 초강대국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었다. 대신 경제·군사·안보·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이 초강대국에 걸맞게 책임있는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과 중국이 과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협력의 정신과 우호적 경쟁”을 펼쳐 지구촌의 공생과 번영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

美·中, 경제·군사 패권 경쟁 가열

지난 한 해 양국은 남중국해와 센카쿠 도서분쟁,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 등을 둘러싸고 많은 긴장과 갈등을 겪었다. 중국은 자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포위·봉쇄 전략이라 비난한 반면, 미국은 중국이 자국을 동아시아로부터 몰아내려는 공세로 받아들였다. 또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비난해왔고, 중국은 미국이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해 달러를 남발한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양국 간 긴장과 불신은 상대국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차원이 아니라 세력 전이에 따른 구조적 현상이다. 따라잡으려는 국가와 따라잡히지 않으려는 국가 간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 만큼 양국은 초강대국으로서 국제 공공재의 제공을 위한 협력보다는 자기중심 손익계산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이 공세적으로 제기한 중국의 급속한 군비 증강과 투명성 문제, 한반도 핵 문제, 환율조정, 인권 문제 어느 하나도 정상회담은 전향적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자국의 성장을 최우선시하는 중국의 강고한 입장도 있지만 미국의 정책적 우선순위 탓이기도 하다.

미국에 이번 정상회담의 헤드라인은 북핵도 인권도 아닌 경제 문제였다. 미국 경제는 작년 2.6%의 완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개월 연속 9%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공황 이래 초유의 사태이다. 재선 가도가 위태로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진입했으며 일자리 창출에 올인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는 환율과 같이 해결에 시간이 걸리는 구조적 문제보다 450억달러 상당의 미국 상품 구매, 중국의 대미 투자 약속 등 일자리 창출과 직접 관련된 조치가 이루어졌다. 나아가 미국은 수출 증대를 위해 중국에 시장개방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할 것이다.

두 초강대국이 실리에 기반한 전략적 경쟁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힘겨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깊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에 있으므로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을 군사안보 목적으로 활용해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 전략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첫째, 경제적으로는 중국,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과 가까이 하려는 이중전략이 성립하려면 미·중관계가 우호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양자가 갈등을 넘어 대결국면으로 치달을 경우 한국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몰릴 것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1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비공식 만찬을 나누기 위해 
                            백악관에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 | 신화연합뉴스



한국 ‘양다리 전략’ 궁지 몰릴 수도

둘째, 미국은 상대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동맹국에 안보 제공의 대가를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중국과의 버거운 경쟁 속에서 미국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주민의 비원을 저버리고 미국의 이전안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한국 역시 연평도의 포연이 채 가시기 전에 미국의 이해를 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마무리한 바 있다. 미군을 더 원할수록 미국민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

한국이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미·중 경쟁을 완화시키고, 제도적 틀 속에서 힘겨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한국은 차가운 머리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미국과 대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 2011년은 여러모로 벅찬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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