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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경향신문 정치부장


그가 무도한 정권에 의해, 국가의 폭력으로 사법살인된 지 반세기하고도 2년이 지났다. 그 무참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그가 지향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냉전의 기운 속에서 전쟁마저 운위되고, 서민의 기본적 생활권을 확보하는 복지의 문제를 놓고도 오도된 이념의 시비가 횡행하고, 진보의 정치는 분열과 기득권의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때에 그의 죽음이 정적을 죽이려는, 이 땅의 진보정치 싹을 자르려는, 부패한 보수 독재권력에 의한 정치살인이었음을 확인하는 대법원의 재심 판결이 나왔다. 진보당 중앙위원장 죽산 조봉암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국가보안법의 간첩죄로 사형당한 지 반세기가 넘은 2011년에서야 그때의 사형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바로잡힌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재심 판결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면서 대법원이 52년 만에 판결을 교정한 것은 값있는 것이지만, 너무도 늦은 후대의 속죄는 무참하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죽산 조봉암.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세상은 너무 조용했다. 반세기 만에 바로잡힌 국가폭력과 사법살인의 결과에 대해 정부도, 정치도, 언론도 별 일 아닌 듯 넘어갔다. 그가 죽음으로써 씨를 뿌리고자 했던 진보정치도 예상된 논평을 빼고는 ‘아무 일’ 없었다.

이런 침묵과 무사는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사건으로 법정에 섰던 이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난, 그 긴 50여년의 세월 때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봉암의 죽음과 반세기 만에 이뤄진 ‘잘못된 죽임’이라는 판결은 한 개인의 신원 차원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2대와 3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승만 독재의 최대 위협이 된 그가 탄압과 죽음이 예비된 진보당을 창당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나.


‘반세기 만의 복권’ 반성없는 정치

누대에 걸친 독재의 정권도 지울 수 없었던 역사의 기록 일단을 복기해봐도 그것은 선명하다.

진보당이 창당하면서 내건 5대 강령은 이랬다.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의 달성, 공산독재 및 자본가와 부패 분자의 독재 배격과 혁신정치 실현, 생산 분배의 합리적 계획을 통한 민족자본 육성과 농민 노동자 등의 생활권 확보,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 통일 실현, 교육체계의 국가보장제 수립 등이다.

1956년 창당대회 개회사에서 조봉암은 진보당의 과업으로 민주수호와 조국통일을 내걸었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자유와 평등과 사람다운 생활을 보장하여 줄 진정한 대중적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것만으로도 조봉암의 명예회복과 복원이 단순히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을, 그것도 한참 뒤늦게 바로잡는 것만으로 마무리될 수 없음을 가리킨다.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현실은 지양되었는가. 그가 가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길은 진전되었는가. 그가 꿈꾸었던 평화와 복지의 사회는 이루어졌는가.

아버지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온 팔순의 딸은 대법원의 무죄 재심 판결이 난 다음 “이제 죽어서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다”라고 말해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그래도 세상이 조금 바뀐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그에게는 너무도 무력했을 지난 반세기를 정리했다.

평화통일과 복지사회를 주창하고, 그를 위한 정당을 만든 것 때문에 간첩죄로 사형당한 세상은 이제도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나서도 평화와 민주가 흔들리고 부정당하고, 기본적 복지의 문제마저 편협한 색깔로 난도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조봉암은 1959년 7월31일 사형당하기 직전에 짧은 유언을 남겼다.


그가 뿌린 평화 씨앗 어디 있나

“결국엔 어느 땐가 평화통일을 할 날이 올 것이고 바라고 바라던 밝은 정치와 온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부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되지. 나는 씨를 뿌려놓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그가 죽음으로써까지 뿌린 ‘씨’는 어느 만큼 거두어지고 있는가. 52년이 지나서야 그의 죽음을 신원시킨 지금, 우리 사회가 묻고 대답해야 할 건 이것이다. 무참한 죽음의 사유를 기록할 수 없어 여태껏 공백으로 남겨둔 망우리 산마루 묘비 뒷면, 거기에 ‘평화통일과 온 국민이 잘사는 나라의 씨를 뿌리셨다’고 새길 수 있어야 진정한 조봉암의 시대적 복원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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