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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아래로 매일 자동차 부품을 실은 차량들이 지나간다. 옆으로 문을 여닫는 모양이 새 날개를 닮아서 윙카라고도 부르는데 하나같이 모양이 길쭉하다. 천상 오락 게임 테트리스의 막대기를 닮았다. 테트리스에서 긴 막대는 성과를 나눠 갖기보다 필요할 때 부름만 받고 길쭉하게 서 있거나 누워 있다. 쌍용차 회사는 지난주 목요일 교섭 앞뒤로 부품사를 언급했고 그 규모를 10만이라 썼다. 쌍용차 직원이 5000명 정도니까 20배가 많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런데 회사는 테트리스 긴 막대기처럼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평소엔 아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쌍용차가 사는 길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주 목요일 첫 실무교섭이 열렸다. 3시간 가까이 교섭이 이뤄졌고 생각보다 진척은 많지 않았다. 노사 교섭은 주 1회 목요일에 이뤄진다. 내일이 두 번째 교섭이 있는 날이다. 일상적 교섭과는 달리 공장 밖으로 밀려난 쌍용차지부는 파업권을 사실상 거세당했다. 그러나 연대의 힘과 사회적으로 쟁의발생 신고를 7년 전부터 이미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불리할 것은 없다. 언제든 사회적 파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불리를 따지는 게 별 의미 없다는 얘기다.

26명 희생자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과 지원, 해고자 복직, 손배 가압류 철회, 회사 정상화 방안을 4대 의제로 삼아 구체적으로 교섭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쌍용차가 처한 위치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쌍용차는 전통적으로 SUV/RV 그리고 고급 세단 중심이다. 종합 자동차 회사지만 풀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생존 전략이다. 소품종 고품질의 회사 지향은 적정 규모만을 생산했고 작지만 강한 회사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된 바 있다.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인권단체연석회 주최로 4일 열린 경찰의 '불법채증 규탄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불법채증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의 모습을 채증하던 경찰로부터 입수한 사진을 기자회견장에 함께 전시했다. (출처 : 경향DB)


갈수록 자동차 시장은 과열된다. 숙련 노동자의 손기술은 옛말이 돼 버렸고 기계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사람 단가를 달리 매겨 떨어지는 이윤에 좋아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쌍용차 고유 기술력의 차별성과 경쟁력도 없애버린다. 최근 카피캣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독보적이던 SUV/RV 전문 종합 자동차 회사는 옛 영광을 간직한 채 벽에 걸린 드라이 플라워 신세다. 디자인은 차별이 되지 못하고 부품 또한 대동소이하다. 아니 풀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 회사의 품질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쌍용차가 그동안 줄기차게 파 들어갔던 틈새시장(Niche Market) 또한 과열 양상이다. 편의 사양의 차별화로 누릴 수 있는 특수는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깔끔한 디자인도 변화되는 욕구를 채워내기엔 1개월이 버거울 지경이다. 쌍용차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해고자 복직이나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대책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혁신할 수 있고 그것의 경쟁력은 있는가가 초점이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이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억지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강점이 경쟁력이 있는가를 차갑게 따져보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7년간 공장 밖에서 지켜본 바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둔한 경영의 연속이었다. 어렵다고 매번 말하면서도 정말 어려운가 의심스러운 행보였다. 긴장도 없고 경쟁심도 사라졌다. 뼈 빠지게 일하면서 내일은 나아지겠거니 순진하게 일만 하는 공장 동료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가.

쌍용차 교섭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회사는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이 아니라 생각 점유율(Mind Share)을 높이는 전략을 짜야 한다. 고객은 시장이 아니라 생각이란 것이다. 브랜드 이름에 골몰하지 말고 브랜드 이념(Brand Ideology)에 집중해야 한다. 부품사 협력사를 언급하려거든 신차 출시 성과급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말해야 한다. 이 부분은 우리도 고민할 것이다.

쌍용차는 늘 불안을 안고 사는 회사다. 경쟁력도 그리 높지 않고 제품의 독특한 차별성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티볼리가 그나마 가난한 집안 효자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현실이다. 쌍용차가 이번 교섭을 통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또 어떤 어필을 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해고자 복직 문제로 시작된 이번 쌍용차 대수술이 회사 입장에선 하늘이 준 기회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건 경영적 마인드에서도 이해되는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쌍용차 교섭은 기회의 공간이다. 주먹구구식으로 해고자 숫자를 줄이고 희생자 대책으로 몇 푼 생각하는 그 아둔함을 버리고 진짜 쌍용차가 살 길은 뭔지 눈뜨길 바란다. 기회는 오랜 시간 제공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작은 문제를 가지고 시간 끌고 싶은가.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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