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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하다. 벽의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벽 없는 굴뚝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물에 젖은 물건을 들어 옮기며 허리를 폈다 숙였다를 반복하니 자연스럽게 운동이 된다. 머리를 감고 발을 씻고 속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오전 나절이 후딱 간다.
그저께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팽목항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십일 동안 걷는단다. 굴뚝에 올라 SNS에 올리던 점심밥 사진을 차마 올릴 수 없었다. 아스팔트가 뚝뚝 부러지는 차가운 날씨에 바람든 무처럼 뼛속이 숭숭 뚫린 이들이 길에 주저앉지나 않을까 생중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손목이 부은 탓에 세월호 팔찌가 꽉 껴서 며칠 동안 빼놓고 있었다. 얼른 손목에 다시 찼다. 할 수 있는 게 우선 그거였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펼쳤다. 두 번째 한 일이다. 책 한 권을 하루면 읽어내는 급한 성격이지만 20일간 나눠 읽겠다고 다짐했다. 세 번째 한 일이다. 나 좋자고 한 일이었고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다독인 거였다. 걷고 있는 그분들께 따뜻한 차 한잔보다 못한 일을 나는 세 개나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걷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쌍용차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였다.
지난 1월21일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의 문이 열렸다. 네 가지 의제를 다루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 대책이 있었다.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와락 대표가 첫 번째 전화를 건 사람은 나랑 가장 친했던 형의 형수였다. 매번 전화를 받지 않고 “우리는 이제 쌍용차에서 빼 달라”고 했던 형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고 회사도 희생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이야기를 해 보….”
전화기가 뚝 끊겼다. 얼굴에 굵은 소금 한 바가지 엎어 쓴 기분이라고도 했다. 와락 대표는 전화를 더 이상 걸기가 어려워 내게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언론에도 많이 나갔으니 전화도 받고 먼저 연락을 해 올 거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착각이었고 유가족의 마음을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7년을 살아 온 것이다. 와락 대표는 다시 전화통을 붙들었을 터다. 차분하게 설명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을 것이다. 26명 가족들에게 일일이 다 전화하고 문자 넣고 주변을 또 한번 알아봤을 것이다. 전화 이후 결과를 말해달라고 했으나 아직 전화가 없다.
예전처럼 연락이 닿고 통화를 한 가족이 열 가족이 조금 넘었을 것이고 연락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했을 것이고 이름 석 자만 달랑 있는 하얀 자료를 아직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것이다. 비고란에 쓴 말이라곤 연락두절 딱 네 글자인데 어떻게 굴뚝에 전화를 했겠는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너무 긴 시간이 지난 건 아닌가 싶다. 용서 받을 마음도 관심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가 마음이 급해진다.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지원과 대책이 살아 있는 우리들 마음의 위안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만졌던 감각을 떠올리는 끔찍함이 지원과 대책보다 더 공포이지 않을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조와 회사가 4대 의제를 부여잡고 아등바등 밀고 당기는 교섭이 유가족 입장에선 우습지 않겠는가. 아둔해 보이지 않겠는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7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을 찾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전하는 ‘굴뚝신문’을 보고 있다. 굴뚝신문은 쌍용차 평택공장의 굴뚝 농성 소식을 담아 민주노총이 신문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출처 : 경향DB)
3일째 걷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오늘도 굴뚝에서 보고 있다. 네 번째 일 하나를 찾았다. 뉴욕타임스에 매일 한 번씩 소식을 영문으로 올리고 있다. 여기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땅 위에서 대화가 막혀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허공에 흐르는 통신줄에 힌디어를 붙이고 영어를 붙여 아난드 회장과 끝내 말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세월호는 외국에서 몰라서 해결되지 않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러나 함께 걸을 수 없는 공중에 뜬 발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그 노력이 조금씩 모여 하나의 계단을 만들고 버팀목에 못 하나 박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은 건 아닌가란 생각이 자욱한 안개만큼 짙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이들이지 않나. 손으로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아득해지는 이들이지 않나. 사과는 무엇이며 대책은 무엇인가. 쌍용차 해고자들이 사과를 받는다고 전달할 수 없지 않나. 유가족은 실종자로 때론 생존자로 나뉘었고 쌍용차엔 등을 돌렸다. 가치를 말하는 것도 번지르르한 말장난일 뿐이다. 생목숨 잃은 이들에게 쌍용차 회사는 어떤 사과의 말을 찾아야 할까. 우리는 찾을 수 없으니 당신들이 직접 찾아서 들고 오라. 내일 있을 교섭 자리에서 그 말보따리부터 풀어보라.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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