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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다. 아픈 사람 얼굴처럼 하얗던 굴뚝 벽이 물기를 머금고 생기를 띤다. 세월호 유가족과 20일을 함께 걷고 온 쌍용차 해고자들이 반갑게 복귀 인사차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때보다 생기 있는 모습에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힘들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오히려 힘이 더 생겼다고 대답한다. 배낭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스티커가 불어 있었다. 그 글귀가 눈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침몰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란 생각을 해봤다. 진실은 불침몰성을 가진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순간 혼돈스러웠다. 세월호 참사 300일이 지났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구호가 등장한 건 오래전의 일이다. 세월호의 진실은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란 희망과 바람의 말이었다. 그런데 진실이 침몰과 만나면서 의미는 맥락을 벗어나 다르게 해석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침몰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물에 닿는 것 자체가 침몰이며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공기는 용존산소량으로, 영혼은 물론 밤하늘의 별 또한 별똥별이 되어 바다에 침몰한다. 달빛은 그림자로 빠져들고 태양은 햇살로 침몰에 동참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진실은 물속에 빠졌다. 그래서 20일 동안 팽목항으로 걸어갔던 이들이 인양선의 마음으로 진실을 인양하라 하지 않던가. 가장자리부터 그리고 가장 무거운 것부터 차례로 쏟아져 저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하고 해류에 쓸려갔다. 그런데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단 말인가.

세월호의 진실은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불러내 낱낱이 꺼내야 한다. 세월호 실소유주는 누구인가를 밝혀야 한다. 선박의 실소유주가 누구냐에 대한 의구심이 세월호 참사의 숙주이기 때문이다. 해경의 무능은 공무원들의 게으름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국민 목숨에 대한 태도로 읽어야 한다. 관과 경찰의 유착 정도가 국민의 목숨과 억울함 사이의 압착력이다. 규제 완화와 안전사회 건설이란 말이 뒤죽박죽 섞여 굴러다니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대형참사는 공간을 바꿔가며 굴러다닌다. 각종 규제의 빗장을 푼 규제 완화는 광적으로 팽창하는 가진 자들의 이윤 한계치가 사람 목숨까지 차오르도록 만들어 놨다. 비정규직화는 대한민국을 알바천국으로 만들었고 권언유착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무능한 정권의 용접면처럼 일그러져 있다. 구체적인 진실을 찾고 있는지 그저 좋은 사회로 나아가자며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쏟아내고 있는지 콕콕 찍어 따져 물어야 한다.

진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이다.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은 진실일 수 없고 가짜며 거짓이다. 또한 진실은 적어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동그란 맨홀 뚜껑이다. 맨홀 뚜껑이 세모거나 네모라면 맨홀에 빠져 사람 뒤통수를 내리쳐 죽게 만든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20일간 팽목항으로 걸어갔던 유가족과 해고자들과 수많은 시민들이 흘렸던 땀이 진실이며 허벅지를 움직였던 그 근육이 진실이다. 광화문 농성장 찬 바닥을 지키는 인간의 온기가 진실이며 차량 뒤편에 새겨 넣은 스티커가 진실에 붙어 있다. 국화 한 송이 앞에서 떨리던 그 작은 손과 그림 속 연필 흑연에 진실이 묻어 있고 콩나물머리 같은 4분음표 검정 동그라미 속에 진실이 춤을 춘다. 매일매일 심장을 오그라뜨리는 유가족 몸속 붉은 피가 진실이다. 지워지지 않는 아이들의 명찰과 신발에 묻은 웃음과 쓰다 만 휴대폰 문자가 진실을 각인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 도보행진단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째되는 9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목격자가 존재하는 사건이다. 죽은 아이들의 뇌 속 기억과 살아남은 생존자들, 구조의 책임이 있던 자들과 실시간으로 TV 앞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 정보를 수집하고 배열하고 보도 혹은 통제나 왜곡에 가담한 자들이 있다. 참사의 진실이 아직도 성기고 때론 충돌하고 엉겨붙어 있는 이유다. 벌어진 해석의 여지 속으로 진실은 그 시각 더 깊은 바다로 침몰하고 있다. 인양선을 만들기 위해 팽목항에 4000여명이 모였다. 웃음으로 엔도르핀 기둥을 세우고 엔도르핀보다 4000배 더 강한 울음 속 다이돌핀으로는 마음의 찌꺼기를 청소한다.

숫자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과 그 시간 팽목항을 지켜보고 있는 수천만의 에너지를 읽어야 한다. 이제 그 에너지를 한곳으로 모아 침몰한 세월호의 진실을 꺼내는 인양선을 현실세계에서 만들고 건조해내야 한다.

인양선의 설계와 건조 그리고 인양의 과정이 한눈으로 확인될 수 있는 투명한 인양선을 건조해야만 한다. 진실을 찾을 인양선을 건조하라!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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