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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정부가 일곱 번째 투자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용산 미군기지를 공원화하기 위해 수립한 기본계획을 일부 변경하여 메인 포스트와 사우스 포스트 주변의 세 곳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라 소요되는 9조원의 비용 가운데 3조4000억원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특히 기지 서쪽의 캠프킴 부지는 50~60층 빌딩 7~8개를 짓는 고밀도로 개발하여 ‘한국판 롯폰기힐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세 곳은 ‘산재부지’라 하여 자투리땅 취급을 하고 있지만, 공원 예정 지구와 도로 하나를 두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복합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이름으로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순간 용산공원은 빌딩 숲에 갇히게 된다. 남산 되찾기를 하겠다고 그렇게 돈을 쏟아 붓더니 이제 다시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는 빌딩감옥을 만들겠다는 꼴이다.
변경 계획에 따르면 용산공원의 내부도 사실상 둘로 갈라지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드래곤호텔을 남겨두기로 해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연생태계의 흐름을 방해할 판인데, 메인 포스트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주한 미8군사령부를 남겨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모두 합치면 공원으로 조성할 80만평 가운데 17%를 차지한다. 작지 않은 규모인 데다, 이들 건물이 동서와 남북 축에서 보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변경 계획은 애초의 공원화 비전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정부는 2005년 용산·민족역사공원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며 용산공원을 ‘민족성 및 역사·문화성을 갖춘 자연생태 및 국민휴식 공간인 국가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1900년대의 자연생태로 복원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대로 공원화가 추진된다면 공원이 진정 한국의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용산이란 공간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존중하며 창조하는 공원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군사기지라는 장소적 특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군 기지 자체에서만 역사성을 찾으려 한다. 1906년 이전까지도 이곳에 엄연히 사람이 살았는데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기지의 역사성을 말하면서도 종합기본계획에서조차 역사적 배경을 잘못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언뜻 읽어보아도 3쪽 분량에서 다섯 곳이 나올 정도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어 조사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말할지 모르겠지만, 건물과 장소의 역사성을 조사하는 시작은 출입문제와 관계가 없다. 나중에 수많은 건물, 도로, 터에 대한 설명을 얼마나 정확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한 작품 (출처 : 경향DB)
보다 더 큰 문제는 비전에 걸맞게 역사성과 장소성을 드러낼 만큼 국토교통부와 문화재청이 상상하고 있느냐다. 용산기지는 일본군이 만들었고, 미군이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제국 대 식민이라는 1945년 이전의 세계사를 이해하는 기본 구도가 압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또한 1945년 이후 세계 질서의 기본 축이었던 냉전체제, 특히 전쟁으로 점철된 동아시아 분단체제의 최전선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용산의 역사성과 장소성의 핵심은 식민과 냉전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한국과 한국인이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만의 역사적 경험은 아니었다. 지역사와 세계사 속의 경험이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용산은 탈식민과 탈냉전의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이곳에 한국인의 과거사와 관련한 기억만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식민과 전쟁을 보여주며 화해와 평화를 전파하는 기억 공간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기억은 퇴적되어 가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재생하지 않는다. 당시의 상황과 처지, 가치관 등에 따라 과거의 경험을 새롭게 재생산한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적 경험을 달리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용산공원에서 무엇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까.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만드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변경된 계획은 국회와 시민을 배제한 채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신주백 | 연세대 HK(인문한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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