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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나라를 ‘한국’이라 부르는 것은 애국심이 부족한 소치로서 ‘대한민국’ 넉 자를 다 챙겨 불러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정작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언제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대개 한심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무식하다.

1948년 제헌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기미 삼일운동으로 건립되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1949년의 공식 연호를 ‘민국 30년’으로 정한 것도, 삼일절을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과 더불어 4대 국경일로 삼은 것도, 대한민국이 ‘삼일운동으로 건립’되었음을 국가적으로 공인했기 때문이다. 삼일절을 ‘건국절’이라 명기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3월1일에 결정된 것이 아닌 데다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족답게 개천절과 삼일절, 두 개의 건국절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전문도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삼일운동에서 기원한다는 인식을 그대로 승계했다.

군중이 국기를 흔들며 국호를 연호하는 ‘국기 축제’는 미국에서 1892년 10월21일 콜럼버스 데이(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기념일)에 처음 열렸다. 이후 국기 축제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년 11월8일에는 서울의 일본인들도 자국군이 중국 산동성 교주만에서 독일군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대규모 국기 축제를 벌였다. 삼일운동 당시 한국인들은 바로 이 국기 축제 형식을 채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삼일운동은 독립을 요구하거나 청원한 운동이 아니라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한 것을 기념하는 범민족적 축제였기 때문이다.

독립을 선언했으니 부득불 정부와 의회를 만들어야 했다. 국기 축제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는데,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최종적으로 1919년 4월23일 서울 서린동 봉춘관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가 선포한 임시정부(한성정부)를 정통으로 승인했다. 국민대표대회는 4월2일 인천에서 열린 13도 대표자대회의 결의에 따라 개최된 것으로서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이 대회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대회의 임시정부 선포문은 UP통신 보도로 세계에 알려졌다. 9월6일 상해에서 수립된 통합 임시정부는 상해의 독립운동가들이 이전에 만들었던 임시정부가 아니라 서울의 국민대표대회가 선포한 한성정부였다. 이때 ‘임시정부’라 한 것은 이천만 민족의 총의로 독립을 선언했으나 영토와 대다수 인민이 적 치하에 있는 형편에서 자유로운 선거에 기초한 의회와 정부를 수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은 정부와 의회는 ‘임시’였어도 국가는 ‘임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독립한 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은 바로 이 상해의 한성정부였다.

현재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지정하자는 법안이 ‘대한민국 국회의원’ 65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들 대다수가 평소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무식한 소치가 아니고서야 제정신으로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외세의 선물로 거저 얻은 나라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념, 종교, 지역, 지위를 막론하고 하나가 돼 피로 선언함으로써 세운 나라다.

제94주년(2013년) 3·1절을 맞은 1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4년 뒤인 2019년은 삼일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선포 100주년이다. 지금 필요한 일은 외세의 덕으로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하는 ‘건국절’ 제정이 아니라 헌법정신에 담긴 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선포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후세에 가르치는 일이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삼일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건립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관을 삼일운동 발상지이자 한성정부 선포지인 서울에 짓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철 지난 애국주의라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으나, 2019년 삼일절에는 이념, 지역, 계층을 막론하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기 축제’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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