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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서는 아무도 이길 가망이 없어 보기만 해도 뒤로 넘어간다. 건드리기만 하여도 사나워져 아무도 맞설 수가 없다. … 지상의 그 누가 그와 겨루랴. … 모든 권력자가 그 앞에서 쩔쩔매니,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이 여기에 있다. <욥기 41장>’

1588년 잉글랜드 더비셔주 맘스베리에서 토머스 홉스가 태어났다. 당시 잉글랜드는 구교와 신교의 갈등,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 스페인 등 구교국가의 지속적인 위협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다. 이 와중에 홉스는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 평생을 보냈다고 토로하였다. 그의 역작 ‘리바이어던’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나는 스스로 나를 다스리는 권리를 이 사람 혹은 이 합의체에 완전히 양도할 것을 승인한다. 만인이 만인을 향하여 이처럼 선언하는 것이 달성되어 만인이 하나의 인격에 통합되었을 때 그것을 국가(commonwealth)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가공의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탄생한다. <리바이어던 17장 13절>’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야수와 다를 것 없는 자연상태 인간이 초래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서로 보호받기 위해 의탁하는 더 강한 괴물이 국가라는 해석은 절묘하다. 우리의 안녕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잘못 ‘사나워지면’ 가장 불합리하고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1960년 4월19일 이승만 정권의 불의에 항거하여 민중이 일어서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지난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일단의 무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말 그대로 괴물인 국가를 만들었다. 그 후 군부독재가 32년간 지속되었다. 차츰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최근에 촛불로 박근혜를 탄핵하면서 우리에게 ‘주권’이 있음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으나 잠시 안도하는 순간 언제 폭주하는 괴물에게 먹힐지 알 수 없다.

2012년 이후 마을이나 공동체에 대한 지원내용을 담아 제정되거나 개정된 자치법규는 150여개나 된다. 빈부의 격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갈수록 험해지는 사회, 나날이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환경파괴나 주거환경 악화로 인한 삶의 질 저하 등에 대해 풀뿌리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가 이런 문제 해결에 별로 유능하지 못하니 기업이나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 진영의 주장에 대한 시민사회의 명확한 반대의견이기도 하다. 수세에 몰린 괴물을 둘러싸고 자본과 시민이 한바탕 힘을 겨루는 듯한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홉스 이후 4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시민은 더 이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자연상태의 인간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철학사조와 과학이론과 정치체제의 격변을 경험하여 투쟁이 아니라 협동과 연대가 생존에 더 유효하다는 지혜를 습득하였다. 때때로 괴물을 견제하고 바르게 이끌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는 이런 성장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의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 마을공동체 중간지원조직이나 민관거버넌스 협의체를 자신들에게 협조적인 단체들로 바꾸는 사태가 벌어졌다. 예상보다 좋은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가 탐이 나 시민사회가 맡아 잘하는 일마저 행정조직에서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움직임도 목격된다. 막대한 자원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공권력이 시민사회를 지원하기는커녕 길들이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는 다시 피어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새로운 세상은 대통령 한 명 바꾼다고 열리지 않는다. 우리 바로 옆에서 사나운 괴물이 다시 날뛸지 모르니 민주와 분권과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하는 올바른 지방정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현명하고 단호한 주권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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