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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된 시인 앤 카슨의 아름다운 책 <녹스>를 구성하는 192쪽의 종이는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져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억하기 위해 수집한 편지, 사진, 유품은 낱장의 종이로 끊어지지 않고 애도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는 듯 길게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그 상실을 담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것일까.

<서사학 강의>에서 H 포터 애벗은 이야기의 끝(ending)과 종결(closure)을 구분한다. 끝이 서사의 결말을 형식적으로 맺는 것이라면, 종결은 서사의 갈등을 내용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결은 반드시 서사의 끝에 위치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서사에 반드시 종결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끝은 났지만 종결이 되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애벗에 따르면 서사가 종결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기대가 실현될 것. 둘째, 질문이 답해질 것. 예상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대’는 비교적 충족되기가 쉬우며 충족되지 않더라도 반전의 놀라움이라는 쾌감을 줄 수 있다. (히치콕의 <현기증>처럼 예상을 뒤엎는 불쾌한 엔딩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사건과 관련된 이해를 구하는 ‘질문’은 무수히 발생할 수 있으며 정답이 하나가 아니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논쟁을 떠올려보라.) 그러니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답해지지 않는 질문이 남아있는 한, 어떤 이야기도 종결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에서  황망하게 자녀와 형제를 잃고 장례를 치러야 했던 유가족들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이 믿을 수 없는 참사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경찰, 소방관, 시민들의 구조 활동 및 시신이 병원으로 이송된 경위는 어떠했는가? 앞으로의 수습 과정은 어떻게 될 것이며, 앞으로 비슷한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정부는 그 대답을 충실히 구하기보다는 서둘러 이 참사를 끝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이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게 엄정하게 문책하겠다고 말했다. 대규모 사고는 현장 관리에 미흡한 경찰 소관이니 이를 정부에 막연한 책임을 묻거나 제도 미비와 섞지 말라며 경찰청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의 문제는 참사의 원인을 ‘인파 관리 긴급구조시스템’으로 축소하고, 규명 대상에서 대통령 및 최상위급 책임자들을 제외한 뒤, 그 몫을 실무자에게 떠넘긴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용산구청장, 경찰서장, 소방서장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여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쪼개어 부과하는 것이 마치 이번 참사의 최종적인 해결책이자 진정한 종결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남겨진 비통한 질문은 이번 참사의 책임을 지게 될 대상이 누구누구라는 대답으로 그칠 수 없다. 사회의 비극은 관련 산하기관들이 범한 과실의 기계적인 총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엄정한 문책으로 이번 참사가 법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시작조차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극과 서둘러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끈질기게 붙잡고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를 설명하는 정부의 서사에는 끝만 있을 뿐 종결이 없으나, 우리는 8년 전처럼 종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또 가질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답해지지 않은 질문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연재 | 직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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