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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참사는 며칠 동안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정부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였고 사건의 전후처리에 고심하는 중이다. 부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영면을 바랄 뿐이다.

참사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 사람이 죽은 것 같다는 게시글이었다. 처음 글을 봤을 땐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고 아무래도 축제 기간이다 보니 음주와 관련한 작은 사고가 났을까 싶었다. 뉴스 등에는 자세한 사항이 나오지 않아 인터넷에 이태원 관련 사건 소식을 접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모자이크를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드러누워 CPR을 받는 사상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시신을 파란 방수포로 덮은 모습부터 다각도로 촬영된 사람들은 참사 속 피해자의 장면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CPR의 추억을 아름답게 여과해 애도를 표하는 ‘나’에 심취한 사람들도 온갖 사방 SNS에서 튀어나왔다. 심지어 한 간호사는 병원에서 CPR을 위해 응급 투입된 상황을 브이로그로 찍어 유튜브에 게시해 사과문을 쓰기까지 했으니. 이 모든 과정엔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이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존엄성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학회는 심리적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재난정신건강시스템 마련에 주력하겠다고 밝히며 “사고 당시 참혹한 영상과 사진이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공유되고 있”으니 “이런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민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시민의식을 발휘해 추가적인 유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 영상을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단순히 개개 시민의식만으로 해결될 것 같진 않다. 해당 사건 사고 사진과 영상을 유포한 주체 중에선 기업과 연결된 마케팅 페이지가 있었다. 페이스북의 수많은 페이지들은 해당 영상을 발 빠르게 게시하며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얻었고 지난 7월 ‘쿠팡은 타인의 삶을 착취한다’라는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는 쿠팡의 마케팅 페이지들도 해당 사진과 영상을 통해 기업의 광고에 힘썼다. 수많은 사상자들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가장 취약한 순간의 모습이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장삿속을 보이는 주체가 굉장히 복잡한 과정에서 책임 소재를 묻기 힘든 구조란 점이다. 대기업은 그저 조회수를 위해 광고를 하청으로 외주했을 뿐이고, 마케팅 업체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 이슈몰이가 될 만한 글을 비윤리적으로 무분별하게 퍼왔을 뿐이다.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낸 외주와 하청의 알고리즘 속에서 보이는 사람과 보는 사람, 두 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삼풍백화점 참사 피해자인 이선민 작가는 대한민국의 온 국민이 오징어 게임을 실사판으로 함께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힌남노 수해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 힘든 사회가 아니라 존엄하게 죽는 것조차 다행인 사회에 놓여 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연재 | 직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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