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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돌이켜보면 전국의 학생들이 앞가슴에 쥐를 잡자, 불조심, 원호의 달 따위의 계몽 표어가 적힌 리본을 달아야 했던 시절은 날마다 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쥐약을 나눠줬으며, 쥐꼬리를 많이 가져온 학생에게는 포상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쥐잡기 운동은 한 철이었지만, 쥐를 잡듯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구호는 일 년 열두 달 유효했다. 봄이면 반공 웅변대회를 했고, 수시로 북에서 귀순한 ‘용사’들의 강연을 들어야 했으며, 때때로 북한에서 뿌린 전단(삐라)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때의 아이들 중 하나였던 나는 중학교 때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자꾸 주위를 두리번대는 남자를 간첩으로 확신해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래 지속된 반공 교육의 성과였으므로 포상금에 부풀어 있던 나 자신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내 앞에서 태연하게 자신이 간첩이었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1990년대 말 독일 유학생 부부 간첩 사건, 그 사건은 연일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그 유학생 부부는 독일에 거주하는 간첩과 왕래하면서 진보성향의 한국 잡지를 은밀하게 건넸다고 했다. 그 잡지는 나도 구독하는 잡지였고, 아무나 어디서든 살 수 있었다.

그는 안기부에 끌려가 심문을 받으면서도 영문을 몰랐다고 했다. 고작 잡지 때문이라면 그가 독일에서 친한 사람에게 보여준 건 그 잡지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죄목은 잡지 불법 유통이 아니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개월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분단을 빌미로 오랫동안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피해자 중 하나였던 그는 판문점선언이 있던 날 야트막한 콘크리트 분단선 양쪽을 남북 정상이 넘나드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면서 말했다.

“가자, 개마고원으로!”

그러니까 이젠 이런 말을 마음껏 외쳐도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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